신음하는 '남산 위에 저소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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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숲이라고 다 같은 숲인가요. 남산을 이대로 놔둔다면 몇십년 후 지금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

지난 5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주최한 '도시 생태계의 장기 모니터링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이천용(李天龍·임업연구원 임지보전과장)박사는 현재 서울 남산의 생태계 환경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李박사는 특히 남산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잎·줄기 조직이 강원도 지역 소나무에 비해 크게 손상돼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토양 자체도 수목 생육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산성화돼 있다고 밝혔다.

◇남산 토양은 강산성=2001년 말 현재 남산 토양의 산성도는 pH 4.0이다. 보통 강산성으로 간주하는 산성도 기준은 pH 4.5 정도. 연구자료에서 표본으로 삼은 강원도 계방산토양의 산성도가 pH 5.5인 것과 비교하면 산성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다. pH4.2를 나타냈던 1988년에 비해 크게 산성화됐다.

독일·폴란드 등 유럽지역에서도 산림이 망가진 경우 대부분 토양의 산성화가 원인이었다. 따라서 남산 토양의 산성화도 수목 생육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李박사는 "산성비가 내릴 경우 토양이 이를 거르는 '필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서울 도심의 산들은 이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 채 하류로 그대로 흘려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잎·잔뿌리 기형화=우선 남산과 강원도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가장 큰 차이는 잎의 빛깔에서부터 나타난다. 남산과 강원도 계방산의 소나무 잎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비교해 본 결과 남산 소나무잎은 왁스층이 현저히 붕괴돼 표면이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李박사는 "잎 표면이 윤기나게 하고 내부 조직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왁스층이 붕괴돼 있기 때문에 도심 소나무의 색깔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도심 소나무의 잎이 잘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 잔뿌리의 경우에도 남산 소나무는 산성화된 토양 속에서 수분·양분을 통과시키느라 도관이 가운데 집중해 있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잔뿌리의 숫자도 3분의1 정도로 적었다.

◇낙엽 분해 안돼=남산의 낙엽들은 계방산에 비해 평균 세배 이상 두껍게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산성을 띠는 남산의 토양에서는 미생물이 살 수 없어 낙엽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이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이면 일차적으로는 잠재적인 산불의 위험 요소가 되고 장기적으로는 수목에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큰 숲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남산 등 도심에 위치한 산에 석회나 마그네슘 등의 중화제를 지속적으로 뿌려줘 토양을 약산성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도심의 산을 외딴 섬으로 남겨두지 말고 녹지축 연결이나 생태 통로 형성 등을 통해 숲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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