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슬람도 종교행사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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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할 수 있다’는 발언이 논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는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부지로 당시의 참상을 기리는 성지(聖地)처럼 돼 있다. 그 때문에 한편에선 이슬람 과격분자의 공격으로 근 3000명이 숨진 이곳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것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종교적 자유를 존중해 사원 건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바마가 미국 사회를 양분시킨 이 논쟁에 뛰어들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오바마는 13일(현지시간)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 단식 종료 후 첫 식사인 ‘이프타르’ 만찬 자리에서 “이슬람 신자들도 이 나라의 다른 어떤 사람과 마찬가지로 종교 행사를 할 권리가 있다”며 “이는 맨해튼 남부 사유지에 예배장소와 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할 권리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미국”이라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의 발언을 성토했다. 연방하원의 공화당 원내대표인 존 뵈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반드시 하는 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겠다는 결정은 종교의 자유와 무관하며 9·11 테러 희생자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과 전 하원의장인 뉴트 깅그리치도 오바마를 성토했다. 민주당의 플로리다주 연방상원 후보인 제프 그린도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 잘못 발언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슬람 사원 건립 논란은 정교분리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종교의 자유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명확한 옹호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9·11 테러로 숨진 희생자 가족 단체들은 오바마의 발언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안전하고 강한 미국을 위한 9·11 가족들’이란 단체는 “오바마 대통령은 9년 전 미국의 심장이 무너진 곳에서 미국을 버렸다”고 비판한 반면,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가족들’은 “이슬람 사원 건립을 강력 지지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가열되자 오바마는 14일 한발 물러섰다. 그는 휴가지인 플로리다주에서 “나는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 사원을 지으려는 결정이 지혜로운지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이슬람 신자들은 1억 달러(약 1187억원)를 들여 그라운드 제로에서 180m 떨어진 곳에 이슬람 문화센터인 ‘코르도바 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다. 이 건물에는 이슬람 사원과 함께 스포츠시설·공연장·음식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미 보수주의자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절반 이상의 미국인들은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이슬람 사원 건립에 반대한다. CNN 여론조사에선 68%의 응답자가 반대했다. 찬성은 29%에 그쳤다. 그럼에도 뉴욕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수차례 청문회를 열고 건립 허용 여부를 논의하다 지난 3일 만장일치로 건립을 승인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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