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核개발 책임추궁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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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 개발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내용이 사실일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복잡하게 얽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짚어본다.

편집자

북한 핵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10월 초 미국의 켈리 특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현재도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 더 이상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와 관련한 북한의 발언은 미측의 전언(傳言)을 통해 알려졌고, 아직 공개된 내용은 많지 않다. 북한은 켈리 특사 방북시 고위 당국자와의 회담 장소에서 미 특사가 북한의 제네바기본합의 위반 사실을 제시하자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미 정보당국은 북한의 핵 개발 계획이 그동안 문제돼 온 플루토늄 대신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것으로 1994년의 기본합의 이후에도 지속됐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많은 이들은 북한 당국이 이 시점에서 핵 개발 계획을 전격적으로 밝힌 데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의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이어 9월에 신의주 특구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와 같은 경제 조치의 성공을 위해 외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7월 말의 서해교전 유감 표명에 이은 남북관계의 급진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의 파격적 발언과 조치는 모두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됐다. 미국 특사를 다시 초청한 것도 결국 북·미 관계 개선을 바라는 그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 핵과 관련해서 2005년 특별사찰의 실시를 위해서는 당장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별사찰의 주대상은 과거 핵, 특히 92년 IAEA 신고시에 누락된 핵시설에 대한 강제사찰과 함께 당시 신고된 플루토늄 추출량에 대한 사실 확인으로 판단된다. 당시 북한은 g 단위를 추출했다고 했고, 미국은 핵무기 1∼2개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 10∼12㎏을 재처리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미국은 기본합의 후에도 북한 내에 산재한 십여 곳의 지하시설에서 비밀 핵 개발이 추진되고 있을 가능성을 의심해 왔고, 그 때문에 99년과 2000년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방문조사가 이뤄지기도 했으나 그 확인에는 실패했던 터였다.

아마도 북한의 행동은 북·일 정상회담 당시와 같은 파격적 인정을 통해 핵 문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그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 문제가 과거사였다면 이번 핵 개발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것이며 미래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한반도 핵화는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핵경쟁으로 치달을 것이며, 결코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또 이라크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미국이 당장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향후 가시적 조치로 이어져 '한반도 위기설'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만약 그 내용이 모두 분명한 사실이고 북한이 의도적으로 밝힌 것이라면 북·미 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침 19일부터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므로 여기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사실 추궁과 확인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론 29일에 재개되는 북·일수교회담에서도 추가적인 확인이 이뤄질 수 있다.

북한 측의 파격적 언급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첫째는 핵 문제 자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의 강화다. 한·미 공조 등 국제적인 공조 노력은 물론이고 남북 간에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재확인 등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둘째는 핵개발 지속에 대한 책임 추궁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가 북·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 주로 다뤄졌지만, 핵개발 추진이 사실일 경우 남북 간의 관련 합의는 물론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북한 당국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함께 개발 중단과 이미 개발한 시설 및 물자의 완전한 해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의 일시 중단 및 전면 재검토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평화 유지라는 전제 조건 하에 추구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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