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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긴급구호군 창설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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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기회다. 지금까지는 세계화하면 주로 실업, 아웃 소싱, 전통 문화 파괴 등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돼 왔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이번 참사에서는 세계화가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일이 발생하자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구호금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확보된 구호지원금이 무려 20억달러나 된다. 미국.독일.호주.일본 등은 이 지역에 병력.함정을 파견해 응급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만이 아니다. 민간도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지금 한번 신문을 펼쳐보라. 어느 나라의 신문을 읽어봐도 해일 피해 구호를 위한 독지가와 기업의 성금이 줄을 잇고 있다. 지구촌 공동체는 이번 해일을 계기로 하나로 뭉쳤다. 아무도 이번 참사를 나와는 관계없는'강 건너 불'로 여기지 않고 있다.

우리가 구호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에는 세계화가 있다. 우리는 지구를 거미줄처럼 뒤덮고 있는 인공위성.TV.e-메일을 통해 지진해일의 피해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신문기사를 통해 현지 희생자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우리는 제트 수송기를 통해 각종 구호품을 피해현장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관광업도 한몫했다. 많은 외국인이 관광 목적으로 태국이나 스리랑카의 휴양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푸껫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즉각 '아 거기'라는 심정적인 동조가 생겼다.

국제화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이번 지진해일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선 1920년 지진으로 20만명이 사망했다. 27년과 76년에도 지진으로 각각 20만명과 25만5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중국 지진의 희생자는 이번 해일 피해자보다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 지진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나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당시는 TV가 제대로 보급돼 있지 않았다. 지금처럼 신속한 정보전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지구촌이라는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 다른 구성원에게 인류애를 발휘하려면 시간적.공간적 거리를 극복하고 정서적으로 느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중국 지진의 경우 이 같은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세계화를 통해 우리는 상당 부분 지리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게 됐다. 이것이 과거 중국의 지진과 이번 남아시아 참사의 차이점이다.

지진해일 참사가 인류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진을 비롯한 자연 재해는 또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참상이 되풀이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류는 자연의 공격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제긴급구호군'(International Relief Force)의 창설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구호군은 말 그대로 총을 들지 않는 전문 구호 조직이다. 해일 같은 자연재해 발생에 대비해 수송기.트럭.식량.정수시설과 의사를 포함한 구호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 후 자연 재해가 발생할 경우 긴급구호군은 신속하게 현장에 파견돼 응급 구호.복구활동을 펼쳐야 한다. 당연히 구호군은 지진.해일.병충해.전염병 등을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최첨단 조기경보체제를 갖춰야 한다. 구호군을 조직.지휘하는 일은 유엔과 미국.유럽.한국.일본.중국 등이 주도해야 한다.

반복하지만 지진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언제라도 또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십만명이 희생되는 이런 비극이 또다시 벌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또 하루빨리 국제긴급구호군을 창설해 참사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인류에 이보다 더 숭고한 사명이 어디 있겠는가.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