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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선거 이겼다고 ‘강용석 징계’ 발 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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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에 대한 징계를 두고 같은 당 여성 의원이 열흘 간격으로 한 말이다. 이 열흘 사이에 피해 학생들은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사실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여성 의원의 입장은 달라져 있다. 그 열흘 사이엔 7·28 재·보선이 있었고, 한나라당은 승리했다.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건 한 여성 의원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보도되자 한나라당은 당일로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당원 제명’(출당)이라는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 당 지도부는 “사실로 확인될 경우 출당을 포함해 단호하고 엄중한 조치를 취하라”(안상수 대표)고 서둘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재·보선 승리에 대해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다시 일할 기회를 줬다”(안 대표)고 한 뒤 한나라당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당 윤리위의 ‘당원 제명’을 의결할 의원총회에 대해선 “언제 소집할지 계획된 게 없다”(조해진 대변인)고 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입장도 ‘급할 게 없다’는 모습이다. 윤리특위는 전체 14명 중 한나라당이 과반인 8명이다. 그런데도 2일 전체회의에선 강 의원 징계안을 심사소위에 넘기지 못했다. 논의 과정을 공개할 거냐, 말 거냐로 실랑이를 벌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퇴장했기 때문이다. 또 윤리특위에서의 징계를 위해선 민간인이 참여하는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자문위원의 자격·임기 등을 규정한 국회 규칙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어서다.

7월 20일 ‘당원 제명’이라는 극약 처방을 결정한 뒤 한나라당 주성영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사안이 중대하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신속하게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과 2주일도 안 돼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은 한나라당에서 ‘사안이 중대하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작으므로, 신속하게 결정할 필요 없다’로 취급되고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이래선 안 된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