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혼,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폐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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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이란 제재 협조 요청에 대한 한국의 고민이 깊다. 로버트 아인혼 미 대(對)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은 3일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테러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와 함께 과천 기획재정부를 방문해 우리 당국자들과 대이란 금융제재 문제를 협의했다고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아인혼 조정관은 한국의 금융당국·기관이 이란 멜라트은행과 거래에 신중하게 대처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인혼 조정관은 전날 이란 금융제재에 대해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이는 한국이 멜라트은행에 폐쇄 등 강한 제재를 가하기 원한다는 뜻”이라며 “미국은 지난 3월 글레이저 부차관보 방한 시에도 멜라트은행 제재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국내의 유일한 이란 은행인 멜라트은행은 지난달 초 미국의 대이란 제재법에서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 등 우리 금융기관은 지난달 9일 이래 이 은행과 거래를 전면 중단했다. 이란과 교역해온 우리 기업들의 수출대금 결제는 20일 넘게 정지된 상태다. 이란과 거래 중인 대기업은 20여 개로 수출액은 40억 달러에 달한다. 이 기업들은 거의 전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과 거래를 해왔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은행에 폐쇄 등 제재를 가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장기간 자금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정부 당국자들은 아인혼 조정관에게 “한국은 유엔의 이란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 왔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국내법에 따른 멜라트은행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스스로 판단해 거래 여부를 결정할 사안”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미국을 의식해 자발적으로 멜라트은행과 거래를 끊을 터이니, 정부가 전면에 나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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