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외국의 반미주의, 사연도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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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전임자 시대에 확산된 반미의 불을 끄기 위해 고심해 왔다. 그는 지난해 4월 유럽을 방문해 “미국이 바뀌고 있으니 유럽도 반미주의를 버려달라”고 유럽인들에게 호소했다. 두 달 뒤에는 ‘카이로 연설’로 미국과 이슬람권 간의 화해를 시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PRC)는 ‘글로벌 태도 프로젝트(Global Attitudes Project)’라는 국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PRC의 6월 17일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호감도(favorability)는 서부 유럽 국가에서는 60~70%대로 높아졌지만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에는 10~20%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 보수진영은 오바마의 ‘호감도 증진’ 외교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2008년 대선에 출마해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미트 롬니는 올해 출간한 저서에서 오바마가 반미주의를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잘못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사과하는 오바마의 행보가 반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대체적으로 높다. PRC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2000년 58%, 2002년 52%, 2003년 46%로 계속 떨어졌지만 2008년 70%, 2009년 78%, 올해 79%로 계속 늘고 있다. 우리 내부에도 반미·친미가 있지만 최근엔 친미 성향이 대세다.

나라 안의 반미·친미를 나라 밖으로 가지고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무엇보다 국익을 추구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반미주의를 만난다.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다른 나라 사람들이 반미·친미 하는 이유가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의 부족이다. 반미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좌절감이나 미국에 대한 시기심 같은 심리적 요인,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반발이라는 국제정치적 요인, 자국 문화가 미국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문화적 요인, 미국의 중남미 침공이라는 역사적 요인 등 다양한 동기가 있다. 다른 나라의 반미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며 우리와 원인이 다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의 ‘친미 성향’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미주의를 이해하는 것을 막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점이다. 6월 중순 우리나라 외교관이 리비아에서 추방된 사건도 반미주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9월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성토했다. 이 연설에 대한 국내 보도가 이번 외교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는 카다피의 반미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과 기독교를 동일시하고 반미·반기독교 감정이 혼재된 나라에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파키스탄 내 반미감정이 격화됐다. PRC의 지난달 29일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이 17%, 알카에다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18%다. 미국이 파키스탄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59%나 됐다. 파키스탄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를 겨냥한 극단주의자들의 살해·방화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선교사를 비롯, 교민의 안전을 위해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