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중국의 ‘큰손’ 의료 관광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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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저우(福州)로 가는 고속철 안에서 만난 현지 대학생들이 궁금증을 풀어줬다. ‘샤먼뿐 아니라 성도인 푸저우에도 스타벅스는 없고 대만 브랜드 커피전문점들만 세(勢)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추정컨대 푸젠성 정부의 배려로 스타벅스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사이 대만 브랜드가 독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이런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은 양안(兩岸) 관계의 질적 변화 덕이다. 대만은 말이 통하고 문화를 공유한다는 이점 빼고는 중국 시장에서 한·일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조건에서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번에 체결한 ECFA를 통해 양안의 경제적 밀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게 불 보듯 뻔해졌다. 인적 교류는 이미 급물살을 탔다. 대만 여행업계는 지난해 97만 명에서 올해 150만 명으로 예상하는 중국 관광객 수가 내년에는 200만 명을 넘을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업계는 산업 연계를 통해 고부가가치 창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의료 관광이 대표적이다. 지불 능력만큼 철저하게 서비스를 차등화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중국이지만 의료만큼은 사회주의적 하향 평준화에 묶여 있다. 몸도 아픈데 돈 없다고 치료마저 제대로 못 받는다면 가진 자들에 대한 사회적 증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국정이념인 조화사회 건설과도 배치돼 중국에선 가격별로 차등화된 의료 서비스가 대중화되지 않았다. 중국의 중산층 인구는 약 4억4000만 명. 인구의 30%에 달한다. 현 경제 성장 기조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2억 명 이상 더 늘어날 텐데 대만 최대 여행사 라이언 트래블 왕원신 총재가 ‘중국인 의료관광에 회사의 미래를 건다’고 했을 만하다. 단체 관광만 허용했던 대만 정부도 최장 6개월 동안 개인 관광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을 손질하고 있다. 이런 거대 시장을 대만이 싹쓸이하도록 손 놓고 볼 것인가.

지난달 27일 법무부에서 중국 중산층에 3년짜리 복수 비자를 발급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늘어날 관광객 숫자 못지않게 어떤 관광객을 유치해 큰돈 쓰고 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이 제도 실시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최소한 대만과 경쟁하려면 관광과 접목하는 산업별로 신축성 있게 비자 기한을 조절하는 등 세부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 ‘큰손’들이 선호하는 위치에 간암·심장혈관·척추질환·성형 등 한국이 강한 최고 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도록 제도적 걸림돌은 없는지 치밀하게 따져보고 신속히 대비해야 할 때다.

정용환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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