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회사 하나 또 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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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광장은 기업 매각 및 인수·합병(M&A)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이규화(45)·김상곤 변호사(35)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굵직한 협상(deal)이 있을 때마다 호흡을 맞춰 성공작을 만들어내는 광장의 '스타 콤비'다. 외환 위기 당시의 긴박했던 국내외 기업의 M&A 후일담과 기업 구조조정 전략 등을 들어봤다.

-외환위기 때 가장 힘들었던 협상은.

▶이규화=10대 그룹 중의 하나인 모 기업이 당시 그룹 전체가 흔들릴 만큼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 그룹은 알짜배기 사업을 팔아 위기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수세에 몰린 것을 눈치챈 상대방의 시간 끌기 작전에 고전했다. 당시 한달여 동안 해당 그룹에서 재무·기획·법무팀 임직원들과 먹고 자며 고군분투한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그룹은 요즘 기업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김상곤=99년 12월 말 당시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이었던 제일은행 매각을 위해 호텔에서 보름 가량 협상에 매달렸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매일 밤샘을 하다시피 해 막판에는 체력이 거의 바닥나는 느낌도 받았다. 가까스로 마무리된 계약서에 우리측 요구가 반영된 것을 확인하고 귀가해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계약서 문구가 잘못돼 당황하는 악몽을 꾸고 침대에서 놀라 벌떡 일어난 적이 있다. (모두 웃음)

-기억에 남는 협상은.

▶이=성공한 딜은 두 당사자 모두 이익을 보는 것이지만, 지난 99년말 LG산전이 오티스사에 엘리베이터 사업부문을 판 계약을 꼽고 싶다. 당시 LG산전은 엘리베이터 사업을 성공적으로 팔아 빚을 줄였고, 반대로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오티스는 영업망 인수를 통해 국내 시장을 얻었다.

-국내 기업들은 협상 기술이 떨어진다는데.

▶이=국내 기업 실무자들의 자질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아쉬운 점은 법률적 사고가 생활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외국인들과 협상하다 보면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도 법률지식이 상당한 경우가 많다.

▶김=협상테이블에 앉은 국내 기업인들은 대부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다만 위에서 지시한 사항을 이행하는 데는 익숙하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는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김=기업마다 다르다. 외환위기 때는 재무구조 개선이 큰 과제였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인력의 적절한 배치와 인재 양성도 중요한 구조 개선 목표다. 외국의 M&A사례를 보더라도 그 주 목적이 핵심 인력 확보인 경우도 적지 않고, 반대로 인수 합병에서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 주요 인재의 이탈인 경우도 많다.

-회사와 가정은 어떻게 조화시키나.

▶이=평일에는 가족에게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못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가급적 가족과 지내고 함께 영화도 보는 등 가족의 정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변호사 길을 후회한 적은.

▶이=일하는 과정이 힘든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성취도나 만족감은 어떤 직종에서도 맛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매력있다. 흔히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련다'고 하는데 나는 '내 아들도 이 길을 갔으면 좋겠다'고 권하고 싶다.

▶김=99년 초 상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기업 분할 제도에 따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업 분할을 해 본 일이 있다. 그 때의 성취감은 판사나 검사를 해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표재용 기자

'광장' 은 지난해 7월 법무법인 광장과 한미가 합쳐 몸집을 불렸다. 한미는 이태희 변호사(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사위)가 1977년 설립했다.국내 변호사 1백13명, 외국 변호사 20명 등 1백33명의 변호사를 포함, 회계사·변리사 등 1백60명에 이르는 전문 인력이 강남(포스코 빌딩)·강북(해운센터 빌딩)에 있는 두 개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금액 기준으로 국내에서 기업 인수·합병을 가장 많이 성사시켜 2000년 '아시안 M&A 포럼'이 M&A 국내 1위 로펌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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