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주택담보대출 비율 속속 낮춰 서민 내집 마련 비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1면

은행들이 정부의 부동산 안정 대책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 한도를 낮추고 있어 일반 가계는 돈을 빌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들은 서울과 수도권 등 분양권 전매 제한이 시행되는 투기과열지구 내의 주택에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 경우 수도권 서민들의 집 장만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신한은행은 9일부터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에겐 지금까지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한 금액에서 10% 내지 5%를 뺀 금액까지만 대출해주기로 했다. 주택담보 대출비용도 곧 낮출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시가 2억원인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면 종전 담보비율(80%)인 1억6천만원을 기준으로 세입자가 있을 경우 보장해줘야 할 소액보증금 1천6백만원을 뺀 1억4천4백만원까지 대출했으나, 앞으로는 신용도에 따라 담보비율 60%를 적용해 9천3백60만~1억4백만원까지 대출해 준다. 대출 최고한도가 종전 1억4천4백만원에서 9천3백60만원까지 최고 5천40만원(35%) 줄어드는 것이다.

다른 은행도 비슷한 조치를 준비 중이다. 국민은행은 아파트 담보 대출의 경우 지난달 초 우량고객 우대조치를 실시하며 서울지역의 담보비율을 최저 거래가의 88%까지 높였으나 다시 낮출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지난달 수도권 담보비율을 80%에서 75%로 내린 데 이어 더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흥은행은 1백%까지 인정해 줬으나 9일부터는 90%만 내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출한도를 떨어뜨리면 미리 저축하는 금액의 비율을 높여야 하므로 내 집 마련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나은행 추홍연 가계금융팀 대리는 "대출한도를 무리하게 낮추는 것은 주택구입 실수요자에게는 전세나 월세로 더 살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이광일 개인고객부 과장도 "건당 대출금 평균치는 5천만~6천만원이어서 서울의 비강남권과 지방에서 주택을 구입하려는 저소득층 실수요자들에겐 대출한도 축소가 내집 마련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S은행의 경우 대출 규모가 올해 초 매달 1조원에 이르렀으나 지난 4월 한도를 10%포인트 낮춘 뒤인 5~7월 석달치가 5천여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한도 축소의 파장은 컸다.

또 은행들은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과 분당·일산 등 투기과열지구에 대한 주택담보대출금의 경우 담보비율이 60%를 웃돌면 초과액에 대한 대손충당금(빌려준 돈을 떼일 것에 대비해 은행 내에 쌓아두는 돈)을 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특별점검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은행들은 이를 어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떼일 위험이 커지고 은행에 비용 부담이 되면 금리를 가산하는 현행 금리구조상 대손충당금 부담은 곧바로 대출받는 사람에게 전가된다.

특히 이미 담보대출을 받은 경우에도 충당금 적립을 위해 대출금 회수에 나서는 은행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