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진흥시키자>과학이 지성인들의 덕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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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3면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 가치 체계, 삶의 양식 등을 총칭하는 과학문화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이 된다. 과학 선진국을 살펴보면 여지없이 과학문화가 국가 발전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선 근대적인 사고 방식의 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프랑스 계몽운동의 핵심에는 뉴턴의 과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달랑베르·콩도르세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의 상당수는 과학자들이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이공과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프랑스 대혁명에 이어 나타난 외국과의 전쟁 중에 생겨났는데, 여기에서 공부한 과학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과학의 힘과 역할을 사회에 잘 보여주었다. 나폴레옹 역시 포병 장교 출신으로 과학에 대해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며, 라플라스와 같은 과학자들을 총애해 프랑스 과학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도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은 중산층의 중요한 가치 표현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사회 속에 뿌리내렸다. 영국의 중산층들은 다양한 과학관련 단체를 자발적으로 만들고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신사의 덕목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1826년 마이클 패러데이는 영국왕립연구소에서 과학 대중화를 위한 크리스마스 강연을 도입했는데, 이 강연은 국민의 열띤 관심 속에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영국인들은 영국과학진흥협회의 창립과정을 통해 과학의 경작자·연구자라는 의미에서 과학자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미국에서도 과학기술은 국가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됐다. 피뢰침 실험으로 유명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고 미국 헌법의 기본을 마련한 위대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역시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인물이었다. 2백여년의 역사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산업 발전과 국가 안보에 기여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미국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독일에서 과학기술은 산업적·군사적 의미 이상을 지니고 있다. 과학은 국가의 명예와 위신 차원에서 진흥·육성됐다. 1896년 초 뢴트겐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을 발견했다는 보고에 접한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즉각 이 발견을 치하하는 축하 전문을 보냈다.

당시 독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요즈음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내지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에 해당되는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들이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면 과학기술은 더욱 탄탄하게 발전했을 것이다.

현재의 막스플랑크 과학진흥협회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협회의 기본 계획을 창안했으며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아돌프 폰 하르낙은 카이저에게 제안한 설립취지에서 과학과 군사력은 위대한 독일을 지탱하는 두 기둥임을 강조했다. 독일에서 과학기술은 국가 경영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이 경제적·정치적인 조건에 의해 위기를 맞더라도 과학기술이 쇠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문화적·제도적인 측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해 1920년대에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맞이했다. 당시 독일 대학의 교수와 강사들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그들이 받는 봉급이 구매력을 상실해 연구는커녕 생계조차 유지하기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출현을 가져온 독일 물리학의 황금시대는 독일 통일 이후의 번영기가 아니라 바로 이 어려운 1920년대에 도래했다.

즉 물리학을 뒤흔든 지성사의 대사건은 엄청난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던 19세기 말이 아니라 저널조차 구매하기 힘들었던 20년대에 이루어졌다. 독일이 1920년대라는 어려운 시기에 이처럼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을 이룬 배경에는 그들의 탄탄한 과학문화 기반과 그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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