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사실 부인'減點'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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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노갑(權甲·73)씨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자 변호인단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현 정권 최고 실세였던 점은 차치하더라도 고희(古稀)를 넘긴 고령에다 건강상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부(朴永化 부장판사) 역시 이런 여러 상황을 의식한 듯 판결을 선고하면서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朴부장은 판결 전 "여러 차례 심리를 거치는 동안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고, 어제 저녁에도 재판기록을 밤늦게까지 검토한 뒤 결론을 내렸다"고 이례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재판부가 장고(長考) 끝에 실형을 선고하게 된 데는 權씨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權씨는 검찰에서도 "진승현씨에게서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법정에서도 이를 굽히지 않았다.

陳씨의 돈을 權씨에게 직접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은성(金銀星)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지난달 24일 출석해 "權씨의 자택을 방문해 5천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밝혔을 때도 "金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權씨의 변호인단은 "金씨 등이 權씨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증언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陳씨 등이 權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뤄 權씨의 음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즉 돈을 받은 게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계속해 공소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權씨의 변호인인 이석형(錫炯)변호사는 "여러 증인의 진술을 통해 모든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실형을 선고한 것은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판결"이라면서 항소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더 이상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선고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김옥두(金玉斗)·김원길(金元吉)의원 등 전·현직 민주당 의원 6~7명을 포함, 70여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權씨는 오랫동안 머리를 자르지 못한 탓인지 뒷머리 자락이 감색 양복깃에 닿을 정도로 덥수룩했고 석달 가까운 수감생활로 얼굴도 창백해보였다.

실형이 선고되자 변호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법정을 떠났고 방청석에서는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치적 판결이다"라는 웅성거림과 함께 "힘내십시오"하는 격려도 이어졌다.權씨는 1분여 동안 방청객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한 뒤 퇴장했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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