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길 위에서 김미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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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행은 지도가 정확한지 대조하러 가는 게 아니다. 지도를 접고 여기저기 헤매다 보면 차츰 길이 보이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인다.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스러운 보물처럼 인생의 신비가 베일을 벗고 슬그머니 다가올 때도 있다."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의 소설가 김미진(사진)씨의 여행론을 위의 문장에서 알아챌 수 있다. 조금은 헤매기, 마음을 풀어놓기, 그래서 자신과 만나기쯤으로 金씨의 여행관을 번안할 수 있겠다.

그런 만큼 이탈리아 여행기인 『로마에서 길을 잃다』는 젠체하지 않는 솔직함이 매력이다. 여행지, 특히 서구에 대한 과장된 상찬이나 코트깃을 세운 여행객의 고독감 찬양은 없다. 대신 동료 여행자와 마음이 통했을 때의 짜릿함, 홀로 여행하는 고단함 등이 진솔하게 표출돼 있다.

예컨대 홀로 이탈리아의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일은 '침묵의 벽에 갇힌 식사'이니 대신 패스트푸드 햄버거집을 택했다거나, 버스 안에서 이탈리아인의 사기술에 걸려든 경험을 털어 놓는 식이다.

또 산 피에트로 광장의 예쁜 아이들 사진을 무심코 찍었다가 유괴범으로 오인돼 경찰에 붙잡혔던 일 등을 얘기한다.

여행의 세목을 이루는 이런 해프닝과 그 해프닝에서 비롯된 요동치는 정서야말로 이 여행기를 생생하게 만드는 요소다.

물론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이탈리아의 도시 미학 서술과 미술관 탐방기가 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여행 정보서이자 미술 해설서로도 손색이 없다. 게다가 작가는 미국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지 않은가.

여행 중에도 또 다른 여행을 꿈꾸기 마련이니 저자는 '아무거나 하는 날'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날'을 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여행이 일상과 달라지려면 단지 공간의 이동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마음의 이동 이후에라야 낯선 공간이 비로소 망막에 맺히고 가슴에 자리하게 된다고 작가는 제언한다.

이렇듯 책은 일상 탈출의 쾌감을 원심력으로, 일상의 안온함에 대한 회귀 열망을 구심력으로 한 살아있는 여행기로 읽힌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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