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 30만명, 상암구장 둘러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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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5일 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됐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경기장을 포위했던 붉은 악마들은 경기가 끝나는 순간 일제히 아쉬움의 탄성을 토해냈다.

○…상암동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30만명 가까운 시민이 몰려들었다.

특히 전광판이 설치된 경기장 주변 평화의 공원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인파가 운집했다.

시민들은 경기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룬 이번 월드컵을 영원히 기억하려 했다.

경기장 앞에서 어린 딸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준 30대 주부는 "딸이 크면 꼭 오늘 찍은 사진을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기가 끝나자 대부분의 시민들은 조용히 공원을 빠져나갔다.잠시 실망하던 젊은이들도 곧 밝은 표정을 되찾아 공원에서 벌어진 뒤풀이 축제에 참석, 인기 댄스가수의 노래의 맞춰 춤을 추며 열광했다.

다만 일부 응원족들은 나팔을 불어대며 새벽까지 경기장 주변을 돌면서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또 몇몇 젊은이들은 공원 바닥에 주저앉아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외국인들도 붉은색 티셔츠와 태극기를 얼굴에 그리고 경기장 주변에 나타났다.

경기장 주변 전광판을 통해 경기를 지켜본 유럽연합(EU)사무국 직원인 벨기에인 스매켄스 제비어(39)는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한국축구팀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며 우리 응원단을 위로했다.

중국여행 도중 한국을 찾았다는 캐나다인 스콧 데일리(23)는 "전세계 매스컴에 화제가 된 거리응원 모습을 놓칠 수 없어 23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면서 "관광객 사이에 거리응원이야말로 축구경기보다 더 재미있는 볼거리"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루스 반디(25)는 "친구 두명과 일찌감치 이곳으로 나왔다"며 "길거리 응원을 몸소 체험해 너무나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광판이 보이는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날 밤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20인분용 대형 아이스박스에 김밥·물·맥주 등을 챙겨온 중소업체 '유니더스' 직원 14명은 전광판 앞에서 밤을 지냈다. 이 업체 직원 신연웅(34)대리는 "한국팀의 승리를 확실하게 기원하기 위해 밤샘까지 했는데…"하며 허탈해 했다.

○…경찰은 당초 16만명이 몰릴 것으로 보고 상암경기장 주변에 6개 경찰서 경찰 병력 2천4백여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바짝 긴장했다.

특히 한국의 패배에 따라 일부 응원족이 거친 행동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이곳 경비 책임을 담당한 경찰간부는 "시민 의식이 성숙해 진짜 '악마'가 돼 소란을 피운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공원 주변에서는 '한국법륜대법학회'소속 파룬궁(法輪功)회원 20여명이 나와 수련(修練)장면을 공개, 응원객의 시선을 끌었다.

회원 박창국(48·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공개적으로 파룬궁의 활동상을 알리는 한편 회원들의 기(氣)를 모아 지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다"고 말했다.

정용환·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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