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반 모아 도서관 만들었죠│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

중앙일보

입력


“넓어진 도서관서 다시 한번 동네잔치 열어야죠.”

고양시 행신동에 있는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이하 느티나무)’ 이승희(43) 관장은 지난달 19일 열린 ‘도서관 만들기 동네잔치’를 떠올릴 때마다 코끝이 찡해진다. 도서관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는 이달 말쯤엔 지역 주민들에게 그 고마움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할 참이다.

도서관 1평 늘리기 동네잔치

느티나무는 지난해 1월 초 주민 10가족이 150만원씩 출자해 문을 열었다. 이들은 ‘오가다 들러 쉬면서 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누는 동네 사랑방을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 한사람들이었다. 도서관으로 문패를 내걸었지만 정식 등록은 하지 않았다. 굳이 등록을 하지 않더라도 도서관으로 역할하는 데 별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느티나무는 따로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드나들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 문턱을 낮췄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을 위한 문화강좌와 행사도 지속적으로 열었다. 주민들의 소모임을 위한 공간도 내줬다.

도서관 등록의 필요성을 느낀 건 지난해 말부터다. 후원회원들에게 후원금 영수증이라도 발급해주려면 정식 도서관으로 등록돼 있어야 했다. 도서관 프로그램 운영과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을 받는 데도 등록은 필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29.8㎡(9평)인 느티나무는 작은도서관 등록 기준인최소 면적(33㎡·10평)에서 1평이 모자랐다. 당장 늘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는 것은 물론 확장에 따른 비용도 부담이었다.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열어보라”는 주위의 조언에 이 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관심을 가져줄 주민이 얼마나 될까라는 의구심에서였다. 따라서 ‘도서관 만들기 동네 잔치’는 기금 마련을 위해서라기보다 지역에 도서관을 좀 더 알리자는 취지로 열렸다.

엄마는 자원봉사, 아빠는 무료 공연

막상 판을 벌이자 일이 술술 풀렸다. 도서관 사정을 듣고 바자회 공간을 무료로 내주겠다는 업체가 나섰다. 일일호프 공간도 저렴하게 빌렸다. 옷가지부터 각종 생활용품, 수공예 작품까지 바자회 물품도 넉넉하게 들어왔다. 엄마들은 바자회와 일일호프 자원봉사를, 6인조 아빠 밴드인 ‘동노놀(동네에서 노래하며 놀기)’은 무료 공연을 자청했다.

인근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 학부모들은 잔치 입소문을 냈다. 이날 자정까지 진행된 행사에 다녀간 주민은 600명 남짓. 발 디딜 틈이 없어 문화행사로 준비했던 ‘책 낭송’은 취소했다. 그야말로 ‘동네잔치’가 된 셈이다. 직접 만든 리본공예 작품 25점을 바자회에 기증한 이신영(39·덕양구 행신동)씨는 “딸(초5)이 넓고 시설이 잘 돼있는 학교 도서관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느티나무를 더 좋아한다”며 “도서관이 비좁아 늘 안타까웠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이날 잔치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이웃들도 모처럼 얼굴을 내보였다. 서울에서 가족들과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김윤희(51·서울 정릉2동)씨는 “행신동은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활동 등을 함께해온 주민들이 터를 잡고 살아서인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웃의 정’이 깊다”며 “느티나무가 동네 문화 공간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연히 수익금도 기대 이상이었다. 느티나무는 이날 모아진 수익금에 후원금을 보태 최근 도서관 옆 빈 사무실(26.4㎡)을 임대해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도서관 등록 신청도 마쳤다. 이 관장은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보태 넓혀준 도서관인 만큼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보다 충실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의= 031-972-5444

[사진설명]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있다. 이 도서관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도서관 등록을 할 수 있게 됐다.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