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과학자등 107명 빙산에 갇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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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빙산에 갇힌 과학자들을 구하라'.

영화를 연상시키는 듯한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국의 BBC방송은 14일 "러시아 과학자 79명과 선원 등 1백7명이 탄 선박이 남극 앞바다인 남빙양(南氷洋)의 빙산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돼 이들을 구하려는 비상 작전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남극의 러시아 기지인 노보라자레프스카야에서 탐사 및 연구활동을 마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으로 가기 위해 프린세스 아스트리드해안에서 독일 국적의 막달레나 올덴도르프호를 탔다가 얼음바다 위에서 발목이 잡혔다.

선박이 테이블 모양의 빙산과 유빙(流氷)에 갇혀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선장은 가장 가까이 있는 남아공의 남극 탐험기지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

구조요청을 받은 남아공과 아르헨티나는 즉각 구조선을 띄우려 했지만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이 지역이 한겨울에 접어들어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 50도까지 떨어질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밤이 이어지는 악조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피엣 팩스턴 대변인은 "남극에서는 4월 이후는 항해하기가 어려운 계절이어서 배를 띄우지 않는데도 러시아 과학자들이 위험을 자초한 것 같다"며 "구조활동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유빙 때문에 배가 접근하기 어려울 경우 헬기를 보내 승선객들을 구조할 수는 있지만 헬기가 암흑을 뚫고 사고 해역까지 날아가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선박에는 며칠은 충분히 견딜 만큼 식량이 있지만 구조가 늦어지고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승선자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고 구조관계자는 밝히고 있다.

남아공은 일단 16일께 구조 인력을 태운 아굴하스호를 사고 해역에 보내기로 했으며, 아르헨티나 역시 쇄빙선인 알미란테 이리자르호를 보내 구조선이 얼음을 헤집고 지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줄 계획이다. AP통신은 "구조에 9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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