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아들에 야속… 노무현엔 미안 조만간 결단내릴 가능성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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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들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23일 청와대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이 직원들 앞에서 밝힌 내용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검찰 수사 방향을 제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렇지만 金대통령의 침묵에는 그 이상의 복잡한 심정이 깔려 있는 듯하다.

金대통령은 참모들이 아들 문제를 보고하면 묵묵히 듣기만 하고 본인의 생각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질문을 많이 한 뒤 분명한 결정을 내려주는 평소 스타일과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 올들어 경제와 월드컵 준비에만 전념하면서 국가 신용등급 향상 등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 고무됐던 金대통령이다. 이런 분위기에 자신의 가족 문제가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참담한 마음이 그를 참모들 앞에서조차 침묵하게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또 金대통령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도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이회창 대세론'에 제동을 건 후보를 도와줄 수는 없어도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있다는 것이다.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아들들에게 다소 야속한 마음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金대통령의 심정이 어느 때보다 참담한 상황에서 홍걸씨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청와대의 긴장감은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고위 관계자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일단 대통령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화난 국민 정서를 달래기 위해 박지원 비서실장이 공식 사과를 했다. 朴실장은 "비서실 직원들이 관련된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참으로 죄송하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의 사과는 홍걸씨가 아니라 '비서실 직원들이 관련된 일'에 대한 것이다.

청와대 주변에선 한때 홍걸씨의 자진 귀국→물의를 빚은 데 대한 대국민 사과 및 해명→검찰 수사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청와대 측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홍걸씨를 자진 귀국시키는 것 자체가 범죄 혐의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특히 야당의 정치 공세를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상당한 혐의를 잡고 소환을 통보한 뒤 바로 구속까지 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규선 게이트'의 초기 단계 때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비장한 자세로 바뀌는 분위기다. 비서실의 이런 대책과 관계없이 金대통령이 모종의 단안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 흘러나온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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