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아들 사법처리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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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처리를 가급적 당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이 문제가 정치쟁점화되고 여론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대회도 무난하게 치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검찰은 "무슨 소리냐"고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주변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김홍업(金弘業)·홍걸(弘傑) 형제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상당부분 사실을 확인해 이들의 소환을 앞두고 청와대 쪽의 분위기 등 주변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10억원대의 홍업씨 돈을 관리해온 고교동창 김성환(金盛煥)전 서울음악방송 회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홍업씨의 일부 돈에 대해 문제점을 발견했다. 또 홍걸씨도 최규선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해 챙긴 엄청난 자금 가운데 수십억원을 넘겨받았다는 정황과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일단 검찰은 혐의사실이 보다 구체화되는 대로 이들 형제를 소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들의 소환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혐의보다 주변 상황을 고려했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우선 대통령의 두 아들이 동시에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이 검찰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특검의 수사결과를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한 지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성환씨를 소환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검찰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아들을 모두 구속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한쪽을 결정하려면 혐의를 보다 분명하게 확인해야 하나 현재 홍걸씨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어 홍업씨와 관련된 김성환씨의 소환을 늦추고 있다는 관측이다.

청와대의 침묵과 홍걸씨가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검찰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대통령 두 아들의 수사를 둘러싼 여론이 악화되고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어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것이 조기 소환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청와대도 더 이상 입장표명을 미룰 수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국가 대사인 월드컵을 앞두고 아들 문제로 사회가 시끄럽다면 대통령의 체면이 서겠느냐"며 조기 수습을 시사했다.

청와대가 입장을 밝히면 대통령 아들의 처리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둘 중 한명은 구속이 불가피하지 않으냐는 것이 검찰의 분위기다.

검찰은 대가성이 있는 돈거래 혐의가 짙어짐에 따라 알선수재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다. 또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세범처벌법으로 처벌됐듯이, 홍걸씨나 홍업씨를 권력형 비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죄목으로 처벌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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