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복근ㆍ차바타… 진화하는 월드컵 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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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들이 놀이에 푹 빠졌다. 월드컵 놀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외모와 표정, 행동 하나하나가 놀이의 소재다. 경기 영상과 선수 사진은 훌륭한 재료다. 해설 멘트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인터넷은 이들이 창조한 월드컵 유희들로 넘쳐나고 있다.

◇인민복근ㆍ차바타… 패러디 봇물= ‘잔디남’ 시리즈는 이들의 놀이 패턴을 잘 보여준다. 잔디남은 그리스대표팀의 미드필더 카추라니스다. 12일 한국-그리스전에서 자신의 발에 팬 잔디를 쪼그려 앉아 다지는 모습이 포착된 뒤 금세 이런 애칭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그를 ‘지중해 매너남’이라 부르며 각종 패러디 사진을 합성해 퍼뜨렸다. 사진 속 잔디남은 모내기 현장과 잔디 관리 현장, 골프장 등에서 잔디를 꾹꾹 눌러심고 있다. 밀레의 명화 ‘이삭줍기’ 속에 등장해 여인들 사이에서 잔디를 심기도 한다.

기발한 별명과 이를 활용한 패러디, 빠른 확산. 이런 패턴은 차바타 열풍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대표팀 차두리 선수가 사실은 차범근 SBS 해설위원이 조종하는 로봇이다”라는 황당한 설정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네티즌들은 ▶항상 웃고 있다 ▶차두리가 공을 잡으면 차범근 해설위원이 조용해 진다 ▶지치지 않는다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그를 로봇 또는 차바타(차두리+아바타)로 부르고 있다. 그의 등번호 22번이 220V 정격 전압을 상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만화도 인기다.

한번 별명을 얻으면 인터넷 스타가 된다. 한국인들에겐 무명에 가까웠던 잉글랜드 대표팀 골키퍼 로버트 그린. 그는 ‘기름손’이란 별명으로 단시간에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13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평범한 슈팅을 잡았다 놓치며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역대 2002년, 2006년 월드컵에서도 이어졌던 잉글랜드팀 골키퍼들의 실책을 거론하며 ‘기름손 계보’라 부르고 있다. 잉글랜드 코칭 스태프로 남아공을 찾은 데이비드 베컴은 이 실수에 정색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정색 베컴’이라 불리고 있다.

16일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을 벌였던 북한 선수도 훈훈한 애칭을 얻었다. 이 경기에서 값진 골을 넣은 주인공 지윤남 선수는 경기 후 유니폼 교환 때 드러났던 초콜릿 복근 때문에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군살없는 근육질 몸매에 네티즌들은 '인민복근''노동근육''지미네이터' 등의 별명을 붙이며 "운동으로 다져진 최고의 몸매"라는 찬사를 보냈다. 지윤남은 경기 시작 전 눈물을 보인 '인민 루니' 정대세 못지 않은 인터넷 스타로 부상했다.

이 외에도 아르헨티나 감독 마라도나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나훈아를 닮았다고 나온 ‘마라훈아’, 그리스전에서 기성용이 이정수의 발 바로 앞에 닿을 수 있도록 프리킥을 했다고 해서 나온 ‘택배 프리킥’ 등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신조어다.

◇‘주목이 세대’의 대중 지성이 낳은 놀이 문화=이런 월드컵 유희는 독특한 작명과 패러디로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주목이 세대(attention age)’의 특징에서 비롯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풀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 김봉섭 박사는 “현대인들은 계속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데,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에서 주목받음으로써 그런 욕구를 채운다”며 “그런 수단의 하나로 패러디 놀이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작문이나 패러디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네티즌들의 협력으로 진화하는 것을 두고 ‘대중 지성이 낳은 유희’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월드컵이라는 국제적 축제를 두고 다수의 네티즌들이 대중 지성을 발휘해 놀이 문화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인터넷에서 호모루덴스(노는 인간)들은 창조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한다”며 “이런 놀이가 확산하고 진화하는 데 대중 지성이 발휘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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