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유럽 은행들에 합격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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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실시한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진단)를 통과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위기가 생겼을 때 은행들이 충격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희소식이긴 한데, 무디스를 못 미더워하는 쪽도 많다.

무디스가 12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와 포르투갈·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채무문제가 예상보다 악화하더라도 유럽 은행들은 추가적인 자본조달 없이 위기를 견딜 것”이라고 밝혔다.

무디스는 유럽 10개국 주요 은행 30여 개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는 공공부문 채권 가격이 단기간에 지금보다 20% 하락하는 경우를 전제로 했다. 평가 대상 은행의 이름과 은행별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무디스는 평가 대상 은행들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이 9%를 넘는다고 밝혔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8%)을 충족하는 우량 은행이라는 의미다.

무디스의 선임 애널리스트인 장 프랑수아 트렝블래는 “유럽 은행들의 대출 규모는 현재 자본 수준에 비교할 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신용등급의 조정이 필요하진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11일 국제금융연구소(IIF) 연설에서 “그리스의 국가 부도와 유로존 탈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변화하라는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포기하거나 후퇴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최고경영자(CEO)도 “그리스가 채무를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거들었다. 그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험을 우려하곤 했다.

하지만 무디스 발표를 반신반의하는 쪽도 많다. 유럽 은행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디스의 조사 대상인 대형 은행이 아니라 스페인의 저축은행 ‘카하’ 같은 소규모 금융사에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무디스 평가가 재정위기 국가의 국채 매도 사태 같은 심각한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장의 체감도도 무디스 평가와는 거리가 있다. 은행끼리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런던은행간 금리(리보)나 부도 위험을 가늠하는 신용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논평 코너인 ‘렉스 칼럼’을 통해 “좋게 봐도 무디스 발표는 시기상조이고, 나쁘게 보면 무디스가 완전히 틀린 분석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FT는 “투자자들은 신용평가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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