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으로 시작한 위성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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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꿈의 채널'이라는 위성방송이 마침내 안방을 찾아왔다. 임기가 보장된 방송위원회 위원장을 도중하차시킬 정도로 말 많고 탈 많았던 KBS-2TV·MBC·SBS 등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은 제외하고 비디오 84개 채널, 오디오 60개 채널로 스카이 라이프 방송이 선을 보였다.

1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두 차례나 개국을 연기한 끝에 시작한 위성방송이지만 그 첫 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소비자의 권리가 철저히 무시된 '파행 방송'이 그 실체이기 때문이다.

52만명에 달하는 스카이 라이프 방송 계약자 가운데 겨우 6천5백가구만 오늘부터 방송을 접할 수 있을 뿐, 전 계약자가 방송을 보려면 5월 중순이나 돼야 한다. 그나마 보급형 셋톱 박스를 설치한 까닭에 디지털 세계의 진수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엄두도 못내는 반쪽 신세다. 고급형 셋톱 박스의 상용화는 8월 중순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하니 시청자는 5개월 이상 디지털 방송의 묘미를 맛볼 수도 없다. 더욱이 위성방송측의 말을 믿고 MBC·SBS의 난시청을 해소하려고 위성방송을 선택한 70%의 계약자는 허망함이 더할 것이다.

콘텐츠에도 문제가 있다. 프로그램의 질은 차치하고 두개 채널은 자체 준비 부족으로 약속된 방송 시간도 채우지 못한 채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스카이 라이프 방송의 개국은 무리였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설익은 개국에 대해 당국이나 관계자들은 디지털 위성방송은 세계적 추세이므로 이를 선점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국익이라고 설명한다. 경제적 효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방송위원회와 위성방송 사업자들은 고급형 셋톱 박스 설치비의 최소화 방안, 지역 민방과 케이블 방송의 육성책, 지상파 방송의 재송신 정책, 기존 방송과 차별화한 콘텐츠 확보 방안 등 산적한 난제들의 해답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이미 방송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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