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사무실 "담배 출입금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20일 오전 9시30분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 빌딩 옆 자전거 거치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넥타이를 맨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동부그룹이 1월 20일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빌딩을 '금연빌딩'으로 지정하고 직원이 건물 내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벌금을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동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한 회사원은 "빌딩 전체가 금연이다 보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건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면서"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쳐다볼 때는 '내가 왜 이래야 하나'하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주요기업들 사이에 금연이 확산하고 있다.

포항제철 등 상당수 기업들이 회사내에 별도로 설치한 흡연구역조차 폐쇄하고 있으며, 금연 성공자에게 돈을 주는 금연펀드나 금연수당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적극적으로 금연운동에 나서는 이유는 금연이 사무실 분위기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금연 열풍이 주요기업까지 확산=포철은 지난 18일 서울 포스코센터를 금연빌딩으로 하기로 하고 8개소의 흡연구역을 폐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회사의 유병창 상무는 "1995년부터 흡연이 주는 직·간접적인 피해를 직원들이 인식하게 하기 위해 유해성 홍보사진 전시회, 금연수기 공모, 금연학교 등 다양한 금연운동을 실시해 왔다"면서 "2003년이면 포철 내 모든 사업장을 금연지역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KT도 지난 1월 사옥 전체를 금연지역으로 지정했다. 안국약품과 제일기획은 담배를 끊는 직원에게 금연수당을 주고 있으며, 두산 식품BG는 올 초 금연펀드를 만들어 금연에 성공한 직원에게 30만원(개인 납입금 10만원, 회사 지원금 20만원)을 주기로 했다. 대표적인 '금연기업'인 금호그룹은 아예 흡연자를 뽑지 않는다.

◇금연은 생산성 향상에 도움=기업들은 금연이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흡연이 흡연직원과 비흡연직원간 불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흡연으로 인한 호흡기 질병도 기업의 생산성 저하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 내에 흡연실을 설치해 놓을 경우 담배를 피우는 직원의 경우 수시로 흡연실을 오가느라 업무효율이 크게 떨어진다고 판단, 아예 금연빌딩으로 지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부그룹의 최진호 홍보팀장은 "강남사옥으로 입주하기 전에는 건물 내에 흡연실이 설치돼 있어 흡연자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했지만 이제는 흡연자들이 추운 날씨에 건물 밖에 나가는 것을 귀찮아해 담배를 줄이거나 아예 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체 조사한 결과 사옥이전 후 흡연자의 담배 소비량이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변상가 풍속도도 바뀐다=금연빌딩에 입주한 음식점들은 금연으로 "손님이 떨어진다"며 울상이지만 그 주변에 있는 음식점·카페 등은 "손님이 크게 늘었다"며 반기고 있다.

동부금융센터 빌딩 뒤에 위치한 카페 '씨에프'는 이달부터 손님이 50% 가까이 늘었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기 '쑥스러운' 흡연자들이 이곳을 자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카페의 여종업원은 "지난달 초와 비교했을 때 저녁에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은 별로 늘지 않았으나 낮에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포스코 빌딩에 입주한 맥주집의 직원은 "술 마시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기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빌딩에서 샤브샤브 음식점 '장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은영 사장은 "담배를 피우려는 고객에게 이 빌딩이 금연빌딩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의 손님들이 항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금연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정착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