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일 생각 않고 '쓰고보자'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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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요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나 지하철 역에서 신용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인형·시계·주방용품 등을 잔뜩 쌓아놓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공짜로 준다고 합니다. 심지어 돈을 몇만원씩 주는 경우도 있어요.

또 신문·TV 광고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신용카드에 가입하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런데 신문이나 TV뉴스를 보면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가 1백만명을 넘었다''신용카드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신용카드 빚때문에 자살했다'는 등의 보도가 자주 눈에 띕니다. 얼마 전에는 앞으로 길거리에서 불법적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20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신용카드를 내주지 않게 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신용카드가 뭐길래 이렇게 떠들썩할까요.

◇신용카드는 '외상카드'=신용카드는 미국의 호텔 크레디트 레터라는 회사가 1894년에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통신·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먼 곳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신용장'같은 카드를 발급해 이를 현금 대신 쓸 수 있도록 했답니다.

이후 미국의 호텔·항공사·정유사 등이 회원을 모집해 카드를 발급하고,이 카드를 갖고 온 사람은 외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신용카드는 외상거래의 수단으로 등장했어요. 따로 카드회사가 있었던 게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회사가 고정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돈(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들을 자기 회사 카드의 회원으로 모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카드는 다른 곳에선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쓰이는 신용카드와는 많이 다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신용카드로는 1950년에 미국의 다이너스 클럽이 만든 '다이너스 카드'가 최초입니다. 다이너스 클럽의 창립자인 맥나마라가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현금을 갖고 있지 않아 곤욕을 치렀던 경험을 바탕으로 신용카드를 고안했다고 합니다. 현금이 없더라도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카드가 있으면 이 카드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도록 업소(신용카드 가맹점)와 약속을 한 것이죠.

이같은 거래는 카드회사와 가맹점,카드회원 등 3자의 계약을 전제로 이뤄집니다.

<그래픽 참조>

신용카드는 이처럼 외상거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현금서비스나 신용대출(카드론)까지 해주는 등 기능이 확대됐습니다.

◇잘만 쓰면 편리해=신용카드가 편리한 이유는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현금을 일일이 들고 다니는 불편을 덜어준다는 점이겠죠. 현금이 없을 때 다른 사람한테 돈을 꾸지 않더라도 카드로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또 카드로 물건을 사면 물건 값을 할인받을 수도 있고,물건 값을 몇달에 걸쳐 나눠 갚는 할부구매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카드회사가 특정 놀이동산·영화관·경기장 등과 계약을 해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료 입장이나 입장료 할인 혜택을 주기도 합니다. 카드 사용액의 일정액을 현금으로 되돌려주기도 하지요. 연간 카드 사용액에 따라 세금을 깎아주기도 하지요.

어떤 카드는 카드 안에 반도체를 집어넣어 버스·지하철을 탈 때 단말기에 갖다 대면 요금이 척척 계산된답니다.

이같은 편리함 때문에 요즘 웬만한 성인은 신용카드를 몇 장씩 갖고 다닙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급된 신용카드가 8천5백만장을 넘는다니 성인 기준으로 따지면 한 사람당 3.9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해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4백79조원에 이른답니다. 올해 정부 예산이 1백12조원이니까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 수 있겠죠.

◇잘못 쓰면 낭패=신용카드에도 여러 부작용이 있는데 이중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힙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1백4만여명이나 됩니다. 전체 신용불량자 2백45만명의 42%가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죠.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답니다.

그럼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 불량자가 왜 이렇게 많이 생긴 걸까요.

무엇보다 신용상태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카드를 마구 발급한 카드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현재 금융감독원 규정에는 만 18세 이상으로 소득이 있는 사람에게만 카드를 발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 등에 대해서는 부모의 동의를 받고 카드를 내줘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득이 있는지를 알아보지 않거나 부모의 동의 없이 카드를 발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답니다.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민원창구에 접수된 카드 관련 민원은 2000년 9백여건에서 지난해 2천건으로 급증했습니다. 이중 상당수는 미성년자가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하자 부모 등에게 대신 갚으라고 하는 바람에 제기된 것입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금감원은 20세를 넘는 사람에게만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카드를 무절제하게 쓰는 사람이 많은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카드 이용액 중 63%는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대출을 받은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신용카드는 외상거래를 하는 목적으로 나온 것인데 엉뚱하게 돈을 빌리는 데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거죠.

신용카드 회사는 빌려준 돈에 비싼 이자를 물리기 때문에 생각 없이 돈을 빌렸다가는 낭패를 보게 마련입니다.

틴틴 여러분도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신용카드를 갖게 될 겁니다. 그때 '신용은 생명'이란 사실을 꼭 떠올리기 바랍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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