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제쳐두고 돈벌이 부업에 더 열중 '투잡스族'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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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투잡스 족(two-jobs 族·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기업·학교·공무원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본업은 아예 '명함용'으로 여기고 부업에 더 골몰하는 경우도 많아 기업이나 학교 등에선 업무효율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고용이 불안정해진 데다 금전만능 풍조 등이 확산돼 이같은 투잡스 족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태=경기도 용인의 한 중소기업 직원인 鄭모(33)씨는 퇴근 후에도 e-메일을 확인하느라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메일로 주문을 받아 컴퓨터를 조립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鄭씨는 "즉시 연락을 안하면 주문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근무시간에도 늘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토·일요일에는 쉬지도 못하고 부품을 사거나 배달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일로 대당 20만~30만원씩 매달 1백만원 안팎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최근 충남교육청이 학부모 등을 상대로 한 다단계 영업활동을 문제삼아 해임한 천안 M고 모(35)교사는 자신의 연봉보다 훨씬 많은 1억원에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

씨는 개인사무실까지 차려놓고 '사업'을 해왔으며 학기 중에 다단계 판매회사의 포상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회사원 모(32·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유수한 외국계 컴퓨터 업체에 다니면서 부업으로 다단계 판매업을 하던 친구가 자정 가까이 돼서도 집으로 찾아와 물건을 사달라고 해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IMF관리체제 초기에 비해 최근에는 투잡스 족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원 조사 결과 부업을 하는 근로자 중 직장인 등 임금근로자의 비율이 1999년에는 38% 정도였으나 2000년 이후 69% 가량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투잡스 대기족도 많아 지난해 10월 채용정보 제공업체 잡코리아가 직장인 2천2백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87.9%가 "기회만 되면 부업을 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부작용=고리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는 金모(43)씨는 직장상사의 강요로 최근 모 다단계 판매회사에 가입했다. 그는 "가입하면 진급·표창 등으로 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왕따'시키는 분위기여서 부서원 10명이 모두 가입했다"며 "이 때문에 사내 분위기까지 나빠졌다"고 전했다.

인정에 이끌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인 姜모(45·전북 전주시 송천동)씨는 지난해 8월 "50만원을 내면 관광지 숙박시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동료 교사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줬다가 회사가 망해 돈만 날렸다.姜씨는 "요즘엔 부업한다는 소문이 있는 동료들에게서 전화를 받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부업행위를 막을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더욱이 다단계 판매 등 대부분의 경우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의 일선 학교에 대한 일제조사에서 겨우 30여명만 적발됐다.

징계기준도 모호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퇴근 후 공무원 시험준비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다 적발된 Y씨를 중징계하려 했으나 퇴근 후에 한 일인 데다 근무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을 찾지 못해 경징계인 '불문경고'에 그쳤다.

이에 대해 다단계 판매업을 병행하는 서울 K여행사 朴모(35)씨는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며 가계를 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서형식·김방현·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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