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智者疑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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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도끼를 잃어버리자 이웃을 의심한다는 ‘실부의린(失斧疑隣)’ ‘의린도부(疑隣盜斧)’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도 비슷한 말이다. 모두 의심으로 인해 생기는 선입견이나 판단 착오를 경계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지자의린(智者疑隣)’의 메시지는 보다 풍부하다. 송(宋)나라에 한 부자가 살았다. 큰 비가 내려 집 담장이 무너졌다. 부자의 아들은 “수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 것(不築 必將有盜)”이라고 말했다. 이웃집 노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 과연 그날 밤 도둑이 들어 물건을 훔쳐 갔다. 부자는 아들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웃집 노인에 대해선 의심을 했다.

이 이야기의 첫 번째 교훈은 부자에 대한 것이다. 사실(事實)을 존중해야지 친소(親疏) 관계나 감정을 판단의 잣대로 내세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훈의 대상은 이웃집 노인이다. 이웃집 일을 걱정해 주는 ‘괜한’ 말을 했다가 의심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사귐이 깊지 않으면 함부로 충고하지 말라(交淺不可言深)’고 한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한국과 중국 모두 ‘지자의린’을 떠올렸을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이 혹시 선입견을 갖고 북한을 의심하는 건 아닐까 하고. 이를 모를 리 없는 한국으로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물증(物證) 수집에 총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과학적 분석을 통한 조사 결과를 사건 발생 50여 일 만에 비로소 발표했다.

이제 지자의린의 교훈 적용은 중국의 차례가 아닐까 싶다. 한국이 제시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 결과를 평가하고 분석하겠다는 중국의 판단에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일 것이다. 그 판단이 행여 한·중과 북·중 사이의 친소 관계에 따라 좌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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