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지원금 46억 엉뚱한 곳에 펑펑 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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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정부에서 첨단기술 연구개발비로 받은 보조금을 다른 용도에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반도체 개발업체 M사 대표 김모(45)씨 등 11개 업체 대표 및 운영자 12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3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반도체칩·부품소재 개발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지식경제부·교육과학부·중소기업청 등에서 받은 보조금 40억원 중 20억원을 빼돌려 회사 운영비 등으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10개 업체도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 폐수처리 등 첨단기술 개발 명목으로 정부에서 받은 연구비 중 1억2000만~9억7000만원씩을 유용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이들 11개 업체의 전체 횡령액은 46억원에 달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 업체는 거래처와 위장 거래를 한 뒤 돈을 차명계좌로 돌려받거나 “세금 신고용으로 쓰지 않을 테니 영수증을 발행해 달라”며 가짜 영수증 처리를 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일부 업체는 정부 보조금을 정기예금에 입금한 뒤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대표들은 횡령한 돈을 인건비 등 회사 운영자금이나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 규모는 연간 13조5000억원이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찬식 부장검사는 “정부 예산 집행에 있어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보조금 지원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뒷돈이 오가는 등 다른 비리가 있었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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