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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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25. 성철스님 필수품

성철 스님은 원래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기골은 장대했지만 생사를 건 수행에 매달리다보니 젊어서부터 늘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성철 스님이 가장 먼저 챙기는 필수품은 약을 달이는 약탕기다. 해인사 부속 지족암에 계시던 일타 스님이 성철 스님을 얘기할 때마다 떠올리는 기억도 바로 약탕기다.

"성철 스님이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하실 때 보면 가관이거든. 걸망 속에 물건을 차곡차곡 넣으면 많이도 들어가고, 걸망이 그렇게 부풀지도 않을 텐데 짐을 어떻게 쑤셔넣으셨는지 걸망이 울퉁불퉁 불룩한데 그 속에 약탕기가 꼭 들어가는거라. 그걸 어째 걸망속에 잘 넣으면 표시가 나지 않을 텐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젊은 시절 성철 스님의 모습이 상상됐다. 내가 모신 성철 스님은 매사 자로 잰 듯 반듯해야 하는 분인데, 젊었을 때는 큰스님도 참 무심하셨나 보다는 생각이다. 도우 스님의 기억도 그런 젊은 날의 무심한 성철 스님 모습을 말해준다.

"성철 스님 빨래하시는 거 한번 볼 만했지. 물에 주물럭거려 빠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망이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 속에 잠시 담가 두었다가 꺼내서는 후두둑거리는 물방울만 대강 털어서 말리는 거야. 다림질 대신 발로 여기 저기 밟아 큰 주름만 펴면 그냥 입는 거야. 그것이 다였지."

그렇게 무심한 성철 스님인데도 약탕기는 반드시 챙겼다고 하니, 그만큼 약탕기가 필요한 물건이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노년의 성철 스님은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지만 그 외에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시절엔 맹렬한 정진수행이 힘들었는지 늘 탕약을 달여 먹었다고 한다.

약탕기 얘기를 하자면 빠트릴 수 없는 분이 현재 해인사 방장이자 원로회의 의장인 법전 스님이다. 성철 스님의 후배격인 법전 스님은 1950년대 초 경남 통영 안정사 인근에 지은 작은 토굴인 천제굴(闡提窟)에서 성철 스님을 모신 적이 있다.

성철 스님의 첫번째 상좌인 천제 스님이 출가하기 직전이다. 법전 스님은 탕약을 잘 달이기 위해 저울을 활용했다.

저울의 한쪽엔 약탕기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약탕기보다 조금 더 가벼운 돌을 얹어 둔다. 약을 달이다보면 물이 줄어들게 되는데, 자연히 약탕기 쪽이 가벼워져 균형이 맞게 되면 약을 다 달인 것이 된다.

워낙 빈틈 없는 법전 스님인 데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장치까지 해두었으니 혼자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큰스님 시봉에 차질이 없었다고 한다.

성철 스님은 저울을 만들어 약을 달이는 법전 스님 솜씨가 참 신기했던지 말년에 안마를 해드릴 때면 늘 "법전 스님은 희한하게 저울 가지고 약을 달이는데, 기가 막히게 잘 달였제"라고 기억하곤 했다. 성철 스님이 약탕 만드는 일과 관련해 자주 들려주던 옛날얘기가 있다.

"옛날에 어느 대감이 정실 마누라가 있는데, 소실을 둔 거라. 옛날 양반들은 꼭 어데가 아파서가 아이라 그냥 몸 아끼느라 더러 보약을 달여 먹었거든. 어느날 그 대감도 보약을 먹게 됐제. 그래서 먼저 소실한테 보약을 달여 오라는데 정성이 지극했는 거라. 약을 달이다 보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데, 늘 일정한 양으로 약사발을 가져오거든.

대감은 약사발을 들 때마다 '얼마나 정성스러우면 이렇게 약을 잘 달여올까'하면서 그 정성에 흐뭇해했제. 그러다 '소실은 저래 정성스러운데 정실인 본마누라는 어쩔까'하는 생각이 들은 거라. 그래서 큰마누라한테 약을 달여 오게 했거든.

그런데 큰마누라는 들쭉날쭉인 거라. 어떤 때는 그릇 가득 가져오고, 또 어떤 때는 탄 냄새가 날 정도로 빠짝 졸여 갖고 오는 거라. 대감이 하도 괘씸하다 싶어 큰마누라를 친정으로 쫓아버렸제. 그 뒤에 대감은 애첩의 약 달이는 솜씨가 하도 신기해 부엌에 나가 몰래 쳐다본 거라. 가만 보니 양이 많으면 버리고, 졸여서 적으면 물을 부어 맞추는 거 아이가. 기가 막히제. 그래서 애첩을 당장에 내쫓아 버렸다는 얘긴 거라."

성철 스님은 그렇게 얘기를 끝내고서는 한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나도 너거들한테 작은 마누라 약 마이 얻어 먹었제?"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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