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합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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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11일 6차 장관급 회담 막판 절충에서 4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금강산에서 하기로 합의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산가족 상봉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테러사태와 관련한 비상경계 태세를 문제삼아 북측이 "언제 미사일이 날아들지 모르는 남쪽에 비행기를 보낼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취한 고육책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홍순영(洪淳瑛.통일부 장관)수석대표도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산가족을 만나보니 '제3국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며 북측이 금강산을 상봉 장소로 허용할 경우 수용할 뜻임을 이미 내비치기도 했다.

정부는 남북 양측이 이산가족 면회소 자리로 교감(交感)이 이뤄진 금강산에서의 상봉이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숙박.행사 진행 등 열악한 환경에서 각 1백명의 고령 이산가족들을 어떻게 체류토록 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아무리 이산가족이 원한다고 하지만 이번 합의는 '북한과의 대화 끈을 유지하기 위해선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또 다른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튼 북측은 우리가 염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카드'로 우리측을 압박,그동안 개방 차원에서 꺼림칙했던 '서울.평양 교환 방문'을 무산시켰다.

또 테러 관련 경계태세를 문제삼아 수석대표 단독 접촉 등 비공식 만남에서 식량 지원 등의 실리를 챙겼다.

특히 다른 교류.협력사업을 제쳐두고 지난달 23일부터 열려던 남북 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를 조속히 열어 식량 등 대북 지원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강조해 북측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냈다.

공동보도문에는 이와 함께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2차 당국 회담 등 5차 회담 공동보도문에 담겼던 9개 협력사업 중 일부가 명기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의선(京義線)연결과 금강산 육로관광 등 북한 군부의 양해가 필요한 사항은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서울에서 열릴 차례인 7차 회담 시기도 남측은 12월 중순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나,북측이 응할지 의문이어서 결국 서울.평양 교차 개최의 관행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은 헝클어졌던 남북관계 일정을 다시 짜는 데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금강산 상봉 등에 따른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이행하느냐는 과제를 남겼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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