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트증권 클릭 실수로 6개월치 수익금 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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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은 아차하는 순간에 벌어졌다. 리젠트증권의 H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H씨가 정신을 수습하기도 전에 66억원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리젠트증권이 선물옵션에서 벌어들인 6개월치 수익금이 21초 만에 날아간 것이다.

옵션만기일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8시30분. H씨는 평소처럼 컴퓨터를 통해 옵션 주문을 냈다. 8월물 풋옵션 행사가격 62.5짜리를 전날 종가인 1천원(0.01)에 8천8백계약을 팔아 8백80만원을 남기겠다는 계산이었다. H씨는 마우스로 행사가격 62.5짜리 풋옵션을 클릭했고, 매도가격을 1천원으로 적어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클릭한 것은 풋옵션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 상 바로 옆의 콜옵션 62.5였으며 이 상품의 전날 종가는 1천원의 7백50배인 75만원(7.5). 마우스 클릭 잘못으로 75만원짜리 콜옵션을 1천원에 팔아치운 셈이다.

오전 동시호가가 끝나고 매매체결이 시작된 지 21초 만인 9시0분21초. 매매체결을 확인하던 옵션 전문 투자가인 A씨는 환호성을 질렀다. 75만원짜리 콜옵션을 1천원에 1천6백계약이나 사들여 단번에 12억원을 남기는 횡재를 잡은 것이다.

이날 A씨를 포함해 개인투자자 7~8명이 66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로섬 게임인 옵션 거래는 한쪽 편이 66억원을 손해봤다면 다른 한쪽이 반드시 66억원의 이익을 보게 된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 혐의가 없는 단순한 실수" 라며 "리젠트 증권이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A씨 등 전문투자가들이 횡재를 낚은 비결은 스스로 만든 컴퓨터 시스템 덕분이다. 비정상적으로 싸게 나온 옵션주문을 자동으로 낚아채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5월에도 수억원을 벌었다. 이 때도 한 옵션전문투자가가 콜옵션과 풋옵션을 혼동하는 바람에 수십억원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희성.김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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