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당연합 머릿수 정치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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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과 자민련.민국당 등 3당 대표들이 16일 만나 3당 정책연합의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이미 예고된 3당 정책연합이었지만 막상 대국민선언까지 하는 걸 보면서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가 하는 참담한 느낌마저 든다.

우선 3당연합은 부도덕성과 이념적 부조화 때문에 우리 정치를 갈등과 대립으로 더욱 몰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부터 앞선다. 이날 모인 3당 지도부의 면모를 봐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민국당 김윤환 대표 등 세 사람은 모두 5공 때부터 여당의 핵심인사였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 개혁 운운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것도 문제다.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때로 수구적이란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 정당과 가장 진보적인 정당의 연합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념적 격차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접착제는 자리와 이문이란 점에서 3당 정책연합의 부작용에 대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연립정권은 서구 내각제 국가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한 성격의 정당간 제휴다.

물론 정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애쓰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리 보전이나 원내단체 구성이라는 작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정책과 정강마저 외면하는 것은 정당으로서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행위다.

그나마 3당의 공동발표문이란 것도 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힘의 정치를 예고하는 듯해 걱정스럽다. 교섭단체 의석수를 14석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의회주의 원칙(다수결을 의미)에 따라 처리' 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3당연합으로 확보한 과반수 의석을 바탕으로 야당파괴 공작을 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의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간 한바탕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언제까지 머릿수 정치를 할 것인가. 힘의 우위에 도취돼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3당연합에 대한 일말의 정당성마저 와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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