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과잉 적용 시장에 오히려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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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이 과잉 집행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장을 지내며 직원들로부터 최고의 국장으로 꼽혔던 임영철(법무법인 바른법률.사진)변호사가 27일 발간된 '경쟁저널 10월호' 기고를 통해 공정거래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임 변호사는 "시장 지배력이 없는 기업에 대해서도 단지 경쟁을 저해할'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정위가 개입해 제재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약한 우려에도 공권력이 개입하면 시장의 창의력이 위축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공정위의 과잉 개입은 기업과 공정위 모두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기업은 '경쟁 제한성'이란 모호한 규정을 공정위가 어떻게 판단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공정거래법의 형벌 규정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엄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항상 형사 제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각종 신고를 처리하느라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공정거래법이 시장의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업체를 제소한 '경쟁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변하고 있다"고 임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정위가 규제를 하고 벌을 주기보다는 판단하고 중재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공정위의 역할은 심도있는 분석을 해 특정 기업의 행위가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저해하는지를 판단해 기업에 알려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공정위 판단을 수용할지 말지는 기업의 몫이고, 이에 대한 처벌은 법원의 몫이란 얘기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경쟁당국과 기업 간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전체 취급 사건의 70~80%에 이른다"며 "제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타협과 중재를 통해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서울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다 1996년 공정위 법무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겨 5년간 공정위에서 근무했다. 정부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넥스트 코리아'라는 책을 펴냈고, 변호사 개업 후엔 연예인 하리수의 호적상 성별 정정 소송을 대리하기도 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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