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은 숨을 곳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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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가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달 24일 부산 사상구에서 이모양을 납치·살해한 이후 15일 만이다. 검거 과정에서 한 시민의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은 10일 오후 3시쯤 이양 집에서 500여m 떨어진 덕포시장 부근 현대골드빌라 주차장 앞에서 경찰과 격투 끝에 붙잡혔다. 김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7일 오전 골드빌라 부근에 있는 한 미용실 여주인이 출근 후 가게에 보관 중이던 현금 27만원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화장실에는 담뱃재도 있었다. 그는 남편 남모씨에게 연락했고 남씨는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또 경찰은 10일 덕포시장에서 음식물이 자주 없어진다는 신고를 받았다. 제보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빌라 부근에 병력을 추가로 보내 수색을 강화한 끝에 김을 검거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자체 수색 활동 과정에서 김을 발견해 검거했다고 밝혔다.

검거 당시 김은 빌라 옥상에 은신해 있었다.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 오자 빌라 옥상에서 건물벽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다 미끄러져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건물 밑에서 경찰들과 격투를 벌였다. 검거 당시 김은 흉기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긴 머리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부산 여중생 살해 피의자 김길태가 10일 경찰에 검거돼 사상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사건 발생 15일, 공개수배령이 내려진지 8일 만이다. 김길태는 숨진 이모양의 집에서 500여m 떨어진 덕포시장 부근 한 빌라 옥상에 숨어있다가 이날 오후 2시45분쯤 경찰에 발견된 뒤 도주하다 격투 끝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날 흉악범인 김의 얼굴을 공개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경찰은 이날 오후 4시30분쯤 김을 수사본부가 차려진 사상경찰서로 압송해 범행 동기와 그동안의 은신처,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 중이다. 김희웅 사상경찰서장은 “사건 발생 후 15일 동안 김이 도피하느라 극도로 불안하고 많이 지쳐 있다”고 말했다. 김 서장은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부 시인하지만 이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에서 김은 “라면을 끓여 먹으러 (이양의 집을 포함해) 몇 군데 빈 집에 들어갔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 서장은 “김이 제대로 진술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 오늘(10일)은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강덕 부산지방경찰청장은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숨진 이양을 보호하지 못해 치안책임자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간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검거에 적극 협조해주신 시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찰은 이번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성폭력 사건과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김이 지리에 익숙한 사상구 부근에서만 범죄를 저지른 것을 근거로 1500여 명을 동원해 사상구 일대를 집중 수색해 왔다. 그러나 김이 범행 현장 부근에 있었는데도 빨리 검거하지 못해 부실 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글=부산=김상진·강기헌 기자
사진=부산=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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