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육비리 근절 못하면 교육자치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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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교육계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최근 잇따라 온갖 교육비리가 불거지면서 교육계가 비리의 온상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육계가 존경은커녕 신뢰마저 뿌리째 흔들릴 지경이다.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교육비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라고 지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다음 주 중 교육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정치권도 어제 ‘교육비리 척결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교육비리 근절책 마련에 부산하다. 가장 깨끗해야 할 교육계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내몰리게 됐는지 안타깝고 기가 막힌다.

교육계 비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교육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추락시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교육은 지금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고강도 처방이 필요하다. 정부와 교육계는 당장 머리를 맞대고 교육비리를 뿌리뽑는 근본 처방을 마련해 교육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계 비리의 구조적 원인부터 찾아내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교육당국이 비리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검찰이 교육계의 치부를 파헤치겠다며 전방위 수사에 나선 상태지만 이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일 뿐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받아 온 교육행정 조직과 기능을 손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시·도교육감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건 옳은 방향이다. 현재 1만1000여 개 초·중·고의 재정권과 40만 교원의 인사권이 교육감에게 집중돼 있다. 오죽하면 교육감을 ‘교육 소(小)통령’이라고 하겠는가. 반면 지방의회의 교육감 견제 기능은 미약하다. 권한은 크고 견제와 감시가 미흡하면 부패와 비리가 생기는 법이다. 교육감의 인사권 축소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교장을 선발하는 교장공모제를 확대하고, 교장에게 일정 부분 교사 인사 권한을 나눠줄 필요가 있다. 교육감이 일선 학교에 일일이 항목을 정해 예산을 나눠주는 식으로 재정권을 마구 휘두르지 못하게 교장의 학교 운영 자율권도 확대돼야 한다.

장학사나 장학관 같은 전문직의 교감·교장 초고속 승진 혜택도 없애 인사 비리의 싹을 잘라야 한다. 학교보다는 교육행정과 학교지원 분야에서 봉사하려는 사람만 전문직으로 진출하게 하고 학교로의 순환인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16개 시·도교육청 아래에 있는 180개 지역교육청을 개편하는 것도 업무가 중첩되는 교육행정체계 정비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통제와 간섭보다는 일선 학교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센터 기능을 하는 게 맞다.

교육비리 근절을 위해선 교육계의 자성과 자정(自淨)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교총이 “직선제 교육감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은 교육자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 건 그런 점에서 우려스럽다. 교육비리 근절을 위해 필요하다면 교육자치의 틀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교육계는 염두에 둬야 한다. 교육계 스스로 병을 못 고치면 외부의 수술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