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정부의 신행정수도 계획은 사실상 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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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철 헌법재판소장(左) 등 재판관들이 21일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인섭 기자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은 조선왕조 창건 이후부터 장구한 기간에 걸쳐 국가의 기본 규범으로 자리 잡아 법적 효력을 발휘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21일 결정문을 통해 수도 서울의 역사적.정치적 위상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수도 서울은 고려시대 때 현재의 위치에 남경(南京)이 설치돼 서경.동경 등과 함께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 1392년 조선왕조가 창건돼 현재의 서울인 한양에 도읍이 정해진 이래 600여년간 명실상부한 수도로서 기능을 수행했다.

지금의 서울인 한성의 지위는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나타나 있다. 경국대전은 한성에 대해 수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도 경성부(京城府), 즉 서울이 행정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 일제시대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서울의 수도성을 당연한 전제로 해 항일활동 조직을 편성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도 서울의 위상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46년 미군정 법령 제106호 '서울특별시의 설치령' 제2조는 '조선의 수도'로 서울을 지정했다.

서울시가 현재의 특별시 지위를 얻게 된 것은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49년 7월이었다. 이 법률은 정부의 직할 아래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로서 '도'와 '서울특별시'의 설치를 명문화했다. 현행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을 봐도 서울의 특수한 지위를 알 수 있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이 법에 따르면 서울특별시는 정부의 직할 아래에 있으며, 수도로서 특수한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국민은 이미 역사적.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헌재는 이러한 서울의 지위를 고려할 때 수도 이전은 국가 정체성에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수도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국명(國名)을 정하고, 우리말을 국어(國語)로 하고, 영토를 확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과 같이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 사안"이라고 헌재는 밝혔다.

헌재는 "정부가 추진 중인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 이전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추진해온 행정수도 이전 작업을 사실상의 천도(遷都)로 규정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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