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현대시조 100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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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착잡하고 어수선한 세밑, 끈질기면서 온화한 우리의 것들이 그리워 전남 해남을 찾았습니다.뭍이 다하고 바다가 시작되는 땅끝 마을, 바다로 벌겋게 빠지는 취한 해도 보고싶었습니다.

19일 해남군 여성회관에서는 '해남시조문학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부사시사'등의 시조로 한국문학에 우뚝 솟은 고산 윤선도를 배출한 예향답게 서울 ·광주 등지에서 온 시조시인들과 현지 예술인들이 어울려 비록 가난한 무대지만 고전적 향기를 뿜고 있었습니다.

지역 청소년들의 가야금 병창이나 판소리에서는 세파에 찌들거나 문명에 세련되지 않은 땅끝 마을의 바람 ·파도소리가 묻어났습니다. 그 사이 윤금초시인의 자작 시조 낭송에서 불현듯 '그리움'이 정말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가 이를까, 이를까 몰라. /살도 뼈도 다 삭은 후엔//우리 손깎지 끼었던 그 바닷가/물안개 저리 피어오르는데, //어느 날 절명시 쓰듯/천일염이 될까 몰라."라는 '천일염'이란 시조에서 허옇게 소금기둥이 된 내 마음 속의 그리움이 밀물져왔습니다.

여러분도 시조의 율격에 따라 한번 읊어보시지요. 옛 그리움의 애틋함이 그리 초라하지 않게 살아돌아오지 않나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의 몸과 영혼을 벗어두고 마른 바람과 거친 모래 날리는 사막 가운데 서 있었다.우리의 사고와 우리의 옷과 우리의 정신을 이제 남루하지만 우리의 몸과 영혼에 새롭게 단장하고자 한다.그리하여 새소리와 들길과 뭇 생명과 가락과 숨결과 고귀한 자유를 새로운 천 년 우리 구원의 시학으로 삼고자 한다."

해남서 올라오는 길에 위와 같은 취지 아래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이 올 연말부터 태학사에서 차례로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20세기 벽두부터 고전시조의 현대화 작업에 앞장서온 최남선 ·이병기 ·이은상 ·조운 ·정인보를 거쳐 현재 원로·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옥 ·이태극 ·장순하 ·이우종 ·정완영 ·김제현 ·이근배 시인에서부터 신예시인에 이르기 까지 1백명의 시조집이 발행돼 한국현대시조사 1백년의 주옥 같은 작품들을 한데 모으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백년간 민족의 전통시가인 시조는 현대시에 밀려 소위 '군소장르'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중에도 민족의 심성과 가락을 져버릴 수 없는 시조시인들이 수준 높은 작품으로 시조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 나름대로 향토색 진한 시조의 향취를 일궈내고 있고 그 좋은 작품들은 중앙으로 모여지며 1천여명의 시조시인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시대 현대시조 1백인선'이 나오며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아니 부박한 세상이기에 더욱 절실한 민족의 뿌리와 그 흥취를 독자들 가까이서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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