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DJ 국정쇄신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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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보통 시민의 신경은 매우 날카롭다.

노벨상을 수상하고 돌아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모습에서 '국가적 영광' 보다 '국정쇄신책' 의 내용을 찾아내려고 연연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은 분명 시대적 서글픔의 하나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국정개혁이 '국민이 원하는 대로 잘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불신 심리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데 있다.

작금의 총체적 난국을 낳게 만든 구조적 원인에 대해 보통 시민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난국 타개의 방책에 대해서도 웬만한 사람들 모두가 감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DJ 국정쇄신책' 에 거는 기대가 비관적인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그 이유를 꼬집어 본다면 많은 국민의 가슴에서 대통령은 이미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분명 우리 앞에는 새로운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정쇄신 혹은 국정개혁을 준비해야만 하는 국가현실에서의 어젠더 설정의 과제는 왜 국민의 마음과 대통령간에 엄청난 거리가 존재해 위기를 낳고 있는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세상 누구보다도 고통을 겪었고, 정치와 경제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췄으며, 환란의 극복을 주도하고, 일관된 햇볕정책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결과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으니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을 떠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황당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 인식에서의 오류는 상대적 박탈'(relative deprivation)'이라는 개념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즉, 잘 나가기 시작할 때의 상향 기대심리 수준과 실제 현실수준과의 괴리는 그렇지 못할 때보다 더욱 큰 충격을 낳는 것이고 그 격차의 확대의 결과는 결국 체제붕괴와 혁명을 낳는다는 정치이론을 말한다.

金대통령의 취임시 '화두' 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였고 지역주의의 극복이었으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 후에는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이었다.

정치적 홍보와 선전에 의존해 정치적 정당성을 찾으려고 한 여권의 노력으로 한때 국민적 기대는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즘 현실수준은 그 반대로 최저급 상태다. '햇볕정책 효험론' 과 북한 변화론은 '대북 선심론' 과 '저자세론' 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국내의 진보대 보수간의 분열과 갈등은 이미 수면 위로 부상해 있다.

경제위기 의식의 확산과 구조조정의 실패에 따른 연쇄파업과 결사적인 집단 이기주의는 이제 '공적(公的)개념' 과 공동체 윤리로 제어되기 어렵게 돼간다.

이렇듯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최고조에 달해 '위기' 를 연출하는 현실에서 어떠한 국정 쇄신책을 내놓아도 국민의 마음이 쉽게 돌아올 것 같지 않기에 걱정은 태산같다.

민심 수습용 당정개편 혹은 '4대 부문 개혁의 조기 완료' 라는 반복어의 구사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는 우선 대통령의 마음이 확 열려야만 한다. 마음을 열어 국민의 마음에 접근하는 길은 우선 '재집권 정치' 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지금의 대통령을 있게 한 '지역성' 은혜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대북정책에 관련해서도 우월적 자기신념주의에서 상대적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한 마음의 자유상태 속에서만이 언행의 일치는 기약되고 최근 많은 사람들이 문제시하는 'DJ 통치위기' 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이 야당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한나라당에 정권이 넘어가면 피바람이 불 것' 이라고 걱정만 하고 검.경은 자기 포기의 위상추락을 자초하고 있음은 결국 국정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잃고 대통령의 마음만을 읽으려는 데에만 열중해온 결과이기에 대통령의 '닫힌' 마음과 관련된 통치 혹은 리더십의 질과 무관할 수 없다.

이 세상의 어느 지도자도 범접하기 힘든 최상의 영광과 위상을 얻어놓고 만일 내치 때문에 '실패한 대통령' 으로 역사 속에 기억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 우리 국민 모두의 비극적 책임이기에 이번 국정쇄신책에 거는 국민적 기대는 너무나 크고 심각하다.

김동성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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