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굿바이 옐친" 홀로서기 가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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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12월 31일 블라디미르 푸틴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됐다.

당시 옐친은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푸틴이 자신의 개혁정책을 계승할 가장 믿음직스런 인물이라고 치켜세운 뒤 크렘린을 떠났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0년 12월. '. 많은 러시아 전문가들은 푸틴을 더 이상 옐친의 충성스런 후계자로 부르지 않고 있다.

이미 옐친의 그늘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가장 큰 사건이 최근 국가두마(하원)에 의해 채택된 '국가상징물에 관한 법' 이다. 푸틴 대통령은 옐친 전 대통령과 일부 지식인, 인권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옛 소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 작곡의 국가를 21세기 러시아의 새로운 국가로 채택했다.

푸틴은 "러시아는 역사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조화되는 상징을 선택해야 한다" 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곤 국가두마에 21세기 국가 문장(紋章)으로 표트르 대제 이전 러시아 상징이던 '쌍두 독수리' 를, 국기(國旗)로는 표트르 대제 이후 제정 러시아를 상징하는 '삼색기' 를 제출해 새 국가(國歌)와 함께 통과시켰다.

'시보드냐' 등 러시아 언론은 이 사건을 '옐친시대와 고별선언' 이란 제목으로 보도했고 푸틴도 굳이 이를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21세기 시작인 2001년을 맞아 완전히 옐친 세력과 절연된 독자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들이 나돌고 있다.

지방정부 수장들을 중앙에 예속시키기 위한 국가위원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알렉산드르 볼로신 크렘린 행정실장으로 상징되는 옐친시대 인물들을 갈아치워 확실한 푸틴 색깔을 드러낼 것이란 분석들이다.

전문가들은 옐친 사임 후 푸틴이 '옐친 후계자' 로서의 모습을 보였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엔 '옐친과 거리두기' 정책을 시도해와 그의 홀로서기 시도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푸틴이 취임 이후 쿠바.이란.이라크.북한.중국.인도 등 옐친시대에 소외됐던 과거 맹방들과의 유대 강화를 꾀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고 외교정책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푸틴이 이제 국내정치에서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고 풀이했다.

이들은 특히 최근 국가두마에서 합의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법안에 따라 옐친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정치적.도덕적 책무에서 벗어난 푸틴의 홀로서기 행보가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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