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 금융감독 쇄신책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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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금융감독원 기강 쇄신. 이번 주의 키워드다.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벤처와 신용금고.금감원이 연결된 불법대출.로비사건)로 망가진 금융감독원에 대한 정부의 쇄신책이 나올 모양이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 사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현상을 심각하게 노출시킨 이 사건에 잠재된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고 경제를 추스르는 과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정책실행(야구의 투수역할)과 감독(심판)을 한 부서나 기관이 겸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규모와 수법은 달라도 이전에도 있었고, 환경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금감원이 지적받고 있지만 우리 주위엔 그런 요소들이 널려 있다. 행정 선진화를 이룩한 선진 각국은 투수와 감독을 엄격히 분리함으로써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

예컨대 정보통신분야만해도 미국은 연방통신위원회(FCC), 영국은 통신감독청(OFTEL), 독일은 전기통신.우편규제청을 두고 있다.

둘째는 가상현실(버추얼 리얼리티)과 실제 현실(리얼 리얼리티)사이의 혼동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인기절정인 TV드라마 '줄리엣의 남자' 에서 사채업자인 주인공이 마치 홍길동이나 일지매처럼 종횡무진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이다.

실제 현실은 정현준 게이트다. 우린 매일 이런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드라마 때문이지 젊은이들 사이에 사채업이 유망직업으로 꼽히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요즘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가리는 경계를 잃고 있는 장면이 많이 목격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넘지 말아야 할 이 선을 잃어 버린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정현준게이트다.

이번 주에는 현대의 구체적인 자구책이 나오고, 흐트러진 벤처 정책에 손질을 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고, 기업은 내년도 감축경영을 잇따라 밝히고 있는 점이다. 민간연구소들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6% 이하로 잡고 있다.

홍재형 전 재경부장관은 중앙일보의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서 "이럴수록 개혁의 전선(前線)을 넓히지 말라" 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이 취업대책을 포함한 종합경기대책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만산홍엽을 찾는 행락객이 늘고 있는 이면에 지하철에선 홈리스들이 포진하기 시작했다.

곽재원 정보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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