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암표상 대부분 중남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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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언론사별로 취재용 ID카드 발급 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더 많은 취재를 위해 시드니에 추가 취재팀으로 파견됐던 기자는 매 경기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가야 했다.

매표소 수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매표소마다 전체 경기의 티켓을 판매하는 바람에 표를 구하려는 사람으로 줄이 수십m 이상 이어져 있었다.

줄을 서 있다가는 몇시간이 지나도 표를 구할 수 없겠고 취재 시간은 임박해 어쩔 수 없이 암표를 사야만 했다.

펜싱 에페 남자 개인전 경기가 열린 16일 오후 이상기 선수가 준결승에 진출한 경기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암표상이 접근했다. 65달러(이하 호주달러.약 4만원)짜리인데 그만큼만 달라고 했다.

"이날 경기가 다 끝나가니 그렇게 줄 수 없다" 며 40달러를 제시하자 순순히 티켓을 줬다.

이후에도 경기가 시작된 후에는 제값을 다 안주고 암표를 샀다. 개막 이틀째부터 경찰들이 쫙 깔리는 바람에 암표상들은 오래 흥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했다.

김영호의 플뢰레 결승이 벌어진 지난 20일에는 떡?일찍 표를 사 들어가려고 암표상에게 접근했더니 무려 2백달러를 불렀다.

말도 안된다고 돌아서 다른 사람을 찾았다. 따라오라고 한 그는 1백달러를 제시했다. 70달러로 깎자고 하니 두말 없이 오케이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중남미 계열이 대부분인 이들은 10여명이 어울리거나 흩어져 다니면서 서로 휴대폰으로 연락하며 행동했다. 자기들끼리는 스페인어로 말했다.

어디서 표를 구하느냐고 물어보니 "에이전시가 있다" 고 말해 조직적인 암표 공급 라인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얼마에 표를 갖고 오느냐고 물으니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그건 왜 묻느냐" 고 경계의 표정을 지었다.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 는 이들의 말은 강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땡볕이 내리 쬐는 매표소 앞에서 몇시간씩 기다려 본 사람은 이들을 '필요악' 정도로 여기게 될 것 같다.

시드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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