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⑭세종기지에 사는 슈퍼맨과 맥가이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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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종기지에는 이른 새벽부터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기계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건설장비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가동되고 있는 것. 세종기지의 심장인 발전기 소리는 작업중인 중장비 소리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필자가 세종기지에 들어온 이후 이곳에는 지난 2007년 진행된 대수선 사업의 보수작업을 비롯해 부두 증설작업, 온실 설치, 비상숙소 이전 등의 작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곳에 온 후 칠레 프레이 기지, 중국 장성기지, 러시아 벨링스 하우젠 기지 우르과이 아르티가스 기지, 아르헨티나 주바니 기지 등 총 5개국 기지를 돌아봤지만 세종기지처럼 항상 작업을 진행중인 곳은 없었다. 부지런한 한국인의 성격이 세계의 마지막 남은 오지인 세종기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세종기지 대원들의 작업 모습은 좀 과장하면 힘세고 부지런한 슈퍼맨이나 재주꾼 맥가이버 같다. 한국과 동떨어져 있어 기계나 설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또 한 사람만 게으름을 피워도 기지 전체의 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아 공동작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한다.

부지런한 세종기지 대원들의 모습은 제설작업만 봐도 알 수 있다. 필자가 세종기지에 첫 발을 디딘 지난해 12월4일에는 전날 내린 2미터 가량의 폭설을 치우느라 중장비가 굉음을 냈다. 일부 중장비로 치울 수 없는 곳은 사람의 손으로 눈을 치운다.

세종기지와 달리 킹조지 섬에 세워진 다른 나라 기지들은 제설작업을 하지 않는다. 기껏 해봤자 눈이 그칠 때를 기다려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통행로를 만드는 정도다. 하지만 세종기지 대원들은 눈이 내리는 중에도 통행로에 쌓인 눈을 치운다. 대원들은 통로 뿐만 아니라 기지 주변 건물에 쌓인 눈까지도 깨끗하게 치운다.

주변 경치를 보지 않고 기지만 보면 이곳이 남극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세종기지 부두 바다건너 맞은 편 산과 기지 뒷산의 눈, 그리고 멀리 마리안 소만의 빙하가 있어 남극임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연속되는 작업으로 세종기지에는 밤낮이 따로 없다. 얼마 전에는 새로 지은 유류탱크 방호벽 설치를 위한 작업이 마무리됐다. 대원들은 만 30시간 이상 자지 않고 일을 하는 슈퍼맨 같은 괴력을 보여줬다. 식사 때와 새참 때에만 잠깐 휴식이 주어졌을 뿐인데도 불평한마디 없다. 특히 기지 유지보수 사업을 담당하는 엠에이디(M.A.D.) 종합건설에서 파견된 현장 전문가들은 한숨도 자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다. 23차 월동대원들은 기상관측, 보트 운행, 기계설비 유지 등 본연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3교대로 작업을 도왔다.

작업을 지켜보니 M.A.D. 직원들 뿐만 아니라 월동대원들 모두 맥가이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남극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월동대원들 뿐만 아니라 공사하러 들어오는 이들도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베테랑들이다.

세종기지에는 오지에서 생존을 위한 다양한 장비가 갖춰졌다. 기지 유지를 위한 불도저와 포크레인, 페루다 등의 중장비를 비롯해 용접, 절단, 등을 위한 기계 장비들이다. 물론 세종기지에 작업을 위한 모든 장비가 갖춰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비가 없다는 핑계로 손을 놓는 경우는 절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다. 없는 장비는 다른 장비로 대체하고 부족한 부품은 깎고 갈아서 만든다.

실제로 작업에 사용되는 부품과 재료 가운데는 폐자재 가운데 쓸만한 것들로 뚝딱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현재 진행중인 부두 공사에 쓰인 철재 가운데 상당수는 세종기지가 설립되면서 다른데 사용되고 남은 것들이다. 새로 만든 국기봉도 원래는 가로등으로 사용됐던 철봉을 자르고 용접해 만들었다. 이를 통해 폐자재를 버리는데 드는 비용과 환경파괴를 막는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2010년 2월까지 박씨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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