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페루·인도네시아, 군부가 권력의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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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고슬라비아.페루.인도네시아 등 정정이 극도로 불안한 3국에서 군부가 정치향방을 사실상 결정짓고 있다.

이들 3국에서 군은 과거 정권유지의 중심축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최근 정권이 흔들리거나 바뀌는 과정에서 3국 군부는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3국 군부의 동향을 살펴본다.

◇ 유고=네보이자 파브코비치 유고군 참모총장은 20일 "보이슬라프 코스투니차 야당 단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군이 이를 수용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고 말했다.

파브코비치의 이같은 발언은 유고 정권 이양의 최대 걸림돌로 간주돼온 군부의 첫 공식 입장 표명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집단인 군부의 이탈을 상징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구 언론과 세르비아인들은 23일 대통령 선거에서 밀로셰비치 현 대통령이 패배할 경우 집권 연장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이 경우 군부의 향방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왔다.

분석가들은 군부의 이날 발언은 한편으론 야당을 고무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정권교체 과정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밀로셰비치 대통령측과 야당측에 모두 강조한 측면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 페루=유고와 달리 페루 군부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조기사임 가능성을 일축하는 혼미한 정국 한가운데 침묵만 지키고 있어 쿠데타에 대한 우려가 높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자신이 군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수차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군부는 묵묵부답이다. 92년 후지모리와 의회와의 대립시 즉각 지지를 표명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페루 군부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꾸준히 정부 입장을 지지하며 후지모리 집권 10년간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야당은 유례없는 군부의 침묵이 쿠데타를 예고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쿠데타설은 군부와 밀접한 관계의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 육군의 요직에 측근들을 앉혀놓은 것이 확인됐고 후지모리가 몬테시노스와 밀약을 맺는 데 실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수하르토 정권의 철권통치를 뒷받침했던 인도네시아 특전사(코파수스)가 최근 무정부상태로 치닫고 있는 수도 치안 임무를 맡게 됐다.

수하르토 추종세력에 대한 단죄를 주장하는 와히드 대통령측과 수하르토 추종세력간의 갈등으로 정국 혼미가 가속화되면서 군부가 다시 영향력 강화의 호기를 맞은 것이다.

누르파이지 자카르타 경찰청장은 치안불안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코파수스를 동원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군부는 수하르토 추종세력이 아니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코파수스의 정치적 성향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이로 인해 군부의 정치개입이 확산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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