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내 인생 소리에 묻고 (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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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3. 전두환 전대통령

1998년 한국 관광과 투자 유치를 위한 홍보물 '웰컴 투 코리아' 에도 출연했다. 한여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청사초롱을 들고 청와대 뒷뜰 녹지원에서 60초짜리를 4시간 걸려 찍었다.

국악인으로는 사물놀이패 김덕수와 함께 화면에 등장했다. 나는 김대통령 바로 뒤에 서는 행운을 누렸다.

소리 배워서 근래에 나처럼 호강한 사람은 없을거다. 청와대에 여러 번 초청을 받아 소리를 했으니 옛날로 말하자면 임금 앞에서 노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김대통령과는 야당 총재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만날 때마다 국악과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취임식에도 초청받았다.그때 나는 축하의 말과 함께 "일가 친척에게 벼슬 자리를 주지 말라" "매일 아침 운동을 하면서 건강에 신경을 쓰라" 고 들려주었다.

내가 만나 본 전두환 전대통령은 호걸형이었다. 1987년 대통령과 장관, 재벌 총수들이 참석한 전경련 주최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MC 김동건씨의 소개로 무대 중앙에 나와 소리 한 대목을 할 참이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나이를 이쯤 먹었으면 알아서 쭉 뻗어 버려야 허는디, 소리를 헌답시고 껍적거리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소리를 잘 헐라며는 요즘 시러베 발기를 헐 놈들의 말투로 우선은 콘디숑인가 허는 것이 좋아야 쓰는디, 소리란 것이 콘디숑만 좋아가지고는 안 되고 정작은 입디숑이 좋아야 쓰는디. 처음에는 그냥저냥 해보겄지만 낭중에는 제대로 소리가 나올라는가 모르겄습니다. "

이렇게 너스레를 늘어 놓고는 '춘향가' 중 '백발가' 를 불렀다. 앙코르가 터지자 김동건씨가 귓속말로 "기왕에 멍석을 깔았으니 대통령 욕설이나 한바탕 해보시죠" 하는게 아닌가.

"아따 니미럴 것. 김동건인가 김동태인가 허는 저 숭악헌 놈이 시방 나에게 와서 허는 말이, 지눔은 못 하문서 늙은 나에게 허는 말이 대통령 욕설이나 한바탕 해보라는겨. 언감생심 뉘 앞이라고, 에헴, 게다가 즘잖은 체면에 대놓고 욕설은 못 허겄고…. 에라 지긋지긋하던 칠년 세월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무시무시헌 우리 대통령도 물러나 앉게 생겼다니, 고것 참 섭섭하고 시원허구나!"

좌중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내친 김에 즉흥 단가를 지어 불렀다.

"육실허게 말 안 들어 처먹는 백성들을 다스리느라 우리 대통령 그 동안 고생 많이많이 하였소. 우리 대통령 어디 앉아 계시오. 저기 앉은 더 대머리 훌렁 백겨진 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수상쩍은 구린내를 솔솔 풍겨대는 저놈이 바로 우리 대통령일세. "

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가 조용해졌다. 나도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영감, 이리좀 오소!" 호탕하게 웃으며 "이리와서 내 술 한 잔 받고 가야지요" 하는게 아닌가.

양주였나본데 술을 한잔도 못 마시는 터라 마실 때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했다. 부친이 막걸리 대장이셨는데, 술을 한 잔 하시면 꼭 잔소리를 늘어 놓는 통에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돈암동에서 중앙청으로 출근하는 길에 국립국악원에 들러 내 소리를 듣고 가곤했다. 청와대에서 몇차례 공연도 했다. 그는 '적벽가' 중 전쟁 장면을 특히 좋아했다.

의장 때는 악수할 때 손이 불덩어리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손이 싸늘했다. 그때 깨달았다.

권력이란 허망한 것이로구나. 대통령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더니 좋은 자리지만 힘든 자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박전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국악원에 발길을 끊었다.

박동진 <판소리 명창>

정리=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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