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표절기자 해고·편집국장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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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朝日)신문은 28일자 사회면에 문책 인사를 실었다.

지방지인 주코쿠(中國)신문을 상당 부분 베낀 히로시마(廣島)주재 기자를 해고하고 상사인 오사카(大阪)본사 편집국장을 경질했다.

편집국장.지역본부장.히로시마 지국장은 감봉 처분됐다. 유력지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지만 뼈를 깎는 자정의 결의가 담긴 조치다. 기사 도용은 신문기자의 윤리에 반(反)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 8일자 주장.해설면에 실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 기사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핵 보유국의 핵 폐기 약속이 이행되려면 피폭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기사가 도용됐다" 는 주코쿠신문의 항의를 받자 아사히는 곧바로 자체조사에 나섰고 1백40줄 기사 가운데 50줄 가량을 지난달 연재된 주코쿠신문에서 그대로 베낀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5월 현재 발행부수 8백29만여부인 아사히가 83만부 남짓의 지방지 기사를 베낀 일이 알려지는 게 달가울 수 없다. 그러나 아사히는 숨기려들지 않았다.

22일 주코쿠신문에 사과하고 23일자에는 그동안의 경위를 그대로 전하는 기사와 사과문도 실었다.

'본사 기자가 기사 도용' 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두 기사의 유사점을 정리한 표까지 곁들였다.

오사카 본사 편집국장의 사과담화도 실었다. 28일자에 실린 문책인사는 그 후속조치다.

나카노 오사무(中野收) 호세이(法政)대 교수(커뮤니케이션론)는 "기자가, 그것도 유력지의 기자가 다른 기사를 베낀 예는 처음 듣는다.

기자의 윤리가 갈 데까지 간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 도용 사실을 공개하고 기자 본인의 책임 외에 감독 책임까지 물은 조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사히는 1989년에도 사진기자의 '산호초 사건' 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그해 4월 20일자 석간 1면에 K.Y라는 알파벳이 새겨진 산호초의 사진을 실었다.

바닷속까지 자연이 훼손된다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K.Y는 사진기자가 일부러 새겨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아사히의 사장과 편집국장을 비롯한 간부가 물러났다. 아사히는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다른 언론사도 허위보도.오보로 곤욕을 치르기는 마찬가지다.

89년에는 요미우리(讀賣)가 수도권 일대에서 발생한 연속 살인사건과 관련해 보지도 않은 범인의 은거지를 실제 취재한 것처럼 묘사한 기사를 1면에 올렸고, 마이니치(每日)신문도 잡히지도 않은 제과회사 사장 협박사건의 범인이 신문을 받고 있다고 보도한 뒤 사과문을 냈다.

89년의 이 세 사건은 지금도 헤이세이(平成.현재 연호)의 3대 오보 사건으로 불린다.

언론사간 과잉경쟁과 기자의 과잉의욕이 가져온 것으로 기사 도용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최근엔 어느 기자가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의 회견 지침서를 만들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문서 작성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권언(權言)유착이 근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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