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 주변국 4강 4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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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6.15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주변국들은 한결같이 "환영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번 선언의 득실을 따지고 새로운 한반도 전략을 준비하기에 분주하다.

◇ 미국〓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두갈래로 대처하고 있다.

하나는 긴장완화.남북협력을 환영하며 이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활용한다는 '포용'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1주일 내에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발표할 계획이다.

동시에 미국은 평양회담에서 만들어진 북한의 우호적 이미지로 인한 정세의 변화를 긴밀히 검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국가미사일방위(NMD)의 재검토론이 나온다는 점이다.

옹호론자들은 NMD 필요성의 하나로 '깡패국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 을 거론해 왔는데 金위원장의 새로운 이미지가 이 논거를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전략은 '경계심 유지' 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크롤리 대변인은 15일 "50년간 계속된 한반도의 긴장이 한차례의 만남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북한의 계획에는 아직까지 미사일 위협이 존재하고 있으며 현 시점에서 우리는 위협평가를 바꾸지 않았다" 며 입장 불변을 강조했다.

미국은 지난해 중단됐다가 오는 28일 뉴욕에서 재개할 북한과의 미사일 회담에서 '평양회담' 의 진의를 다시 파악한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일부에서 제기하는 주한미군 위상변화론에도 쐐기를 박고 있다.

남북한간 긴장이 줄더라도 러시아.중국과의 세력균형을 위해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중국〓중국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이라는 남북 공동선언 첫째항에 주목한다.

인민일보(人民日報)는 16일자 남북한 정상회담 특집기사에서 이를 주제로 삼았다.

이유는 첫째, 자주를 내세워 대만에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압박할 수 있으며 둘째, 남북이 자주적 해결을 합의함에 따라 주한미군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한이 더 이상 핵 위험국가로 분류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도, 동북아에 전략미사일방위(TMD)체제를 구축할 명분도 없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미국 주도의 TMD체제가 대만까지 이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의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와 함께 남북한과 중.미가 함께 참여했던 4자회담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를 이미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 일본〓남북 공동선언에 따른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과의 관계개선 문제다.

지난달 북한이 연기했던 제10차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에 힘을 쏟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다.

국내적으로는 공격을 받았을 경우를 대비한 유사법제 정비가 늦춰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긴장완화로 법 제정을 밀어붙일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주일미군 철수나 방위비 삭감 여론이 강해지는 것도 경계한다.

미군 기지의 75%가 몰려있는 오키나와(沖繩)현에서는 남북 공동선언 이후 철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방위청이 필요 최소한도의 방위력을 유지한다는 기존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은 이같은 분위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남북의 반일감정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도 걱정한다.

광복절(8.15)즈음에 이산가족 재회를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7월에 열릴 오키나와 서방선진7개국 및 러시아(G8)정상회담의 주재국으로서 남북 공동선언을 측면 지원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 러시아〓러시아는 앞으로 한반도.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질서 형성과정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7월 19일께로 예정된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G8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와 관련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뒤 미국 등에 이를 보장토록 요구하고 NMD 등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한 동북아 군비균형 파괴를 국제적으로 통제하자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남북한과 주변 4강, 그리고 유엔 등이 참여하는 다자간 동북아 안보협의체를 구성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방법으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워싱턴.베이징.도쿄〓김석환.김진.유상철.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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