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한 미사일과 한·미 공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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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정해지기 전에 지난주 황급히 한국을 다녀간 웬디 셔먼 자문관의 공항 기자회견을 두고 이런저런 뒷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도 두텁다고 하면서, 왜 북한의 미사일과 핵문제를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을까. 한국과 미국의 대북공조에 이상기류가 형성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북.미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서 연쇄적으로 북한을 상대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전략적 차원의 사전 정지작업의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수많은 요건 중에서 왜 하필 핵과 미사일을 주문한 것일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미사일은 남한을 겨냥한 단거리 스커드미사일이 주류였지만, 냉전 이후에는 일본과 미국을 목표로 하는 노동 1호.대포동 1, 2호 등의 중장거리 미사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때부터 북한의 미사일은 안보를 위한 '군사적 무기' 에서 대외협상용의 '정치적 무기' 로 변모했다.

미국의 대북 미사일 정책은 전략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군사적인 면을 보면 냉전 이후 미국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주요 세계전략으로 삼고, 북한 핵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94년 제네바협약을 강행했다. 96년부터 북한 미사일 협상을 시작했지만, 5년 동안 미사일 발사 유예선언을 합의하는 데 그쳤다.

또 북한 등을 겨냥한 미국방위전략의 핵심인 국가미사일방위계획(NMD)의 제2차 요격미사일 발사 실험이 실패한 데 이어, 남반구의 미사일 공격에는 무방비 상태라는 기술적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미사일 방위체제 전체가 난관에 빠졌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대선과 클린턴 임기 만료라는 두 가지 복병이 버티고 있다. 미사일전략에 구멍이 뚫린 상태에서 북한 미사일에 대한 산뜻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클린턴-고어의 대외업적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힘겹게 부시 후보와 겨루고 있는 고어 부통령의 대선 레이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필자가 워싱턴에서 만난 조야 인사들도 북한의 대외 개방정책의 진의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한편 국제사회의 비난과 국내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의 리더십 강화와 국제적 위상 강화라는 측면이 동시에 작용한다. 불이익보다는 이익이 많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연간 1억달러 미만으로 급감하고 있다. 국제적 압력으로 국제 미사일 시장이 불황에 빠져 있고, 그동안 수입국들의 기술향상이 진행되었으며, 최신 장거리 기종인 대포동 미사일을 주고객인 중동과 서남아시아 국가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관련국들이 판매 수입을 만회하는 당근을 제시할 경우 협상에 응할 준비가 돼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한.미.일로 축소된다. 북한은 '94년 제네바 핵협상 당시에도 핵문제를 과거, 현재 미래로 세분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최소한을 양보하고 최대한의 보상을 끌어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도 시험발사 중단, 수출, 개발, 실전배치 등 다단계로 나누어서 최대의 실리를 추구할 것이므로 관련국들의 지략을 모을 필요가 있다.

현 상태에서 미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 전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정상회담의 의제 설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이익과 목표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이 한국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문제에 접근하거나, 한국이 미국보다 지나치게 앞서갈 경우 북한미사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양국의 대북 지원과 경협은 효과 없는 중복투자로 전락할 것이다.

미국은 낙관적으로 전망하던 북한의 테러 지원국 리스트 해제를 보류하면서 북한의 결심을 유도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한국이 정상회담을 위해 지나친 선물을 약속한다면 경제제재 완화를 주축으로 한 미국의 협상카드는 퇴색하고 북한 미사일 문제는 계속 공전할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 의제 설정에 미국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한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다. 우리측의 카드도 아껴둘 필요가 있다.

김정원 <세종대 부총장.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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