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세상] 시골 우체국장의 늦깍이 대학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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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호서대학교(학점은행제)에 입학, 대학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나이가 49세로서 만학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83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23년간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터라 생활은 무미건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 즈음 직장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때마침 내게 따끔한 충고를 던져준 어느 상사의 한마디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퇴직하려면 아직도 10여 년이나 남았는데 고졸학력 업그레이드 하세요” 치밀어 오는 모멸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많은 생각과 함께 지나온 시간, 내 자신에게 냉철한 채찍을 가하게 됐고 ‘대학공부’라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사회복지학과 야간과정에 지망해 입학식을 하고 처음으로 강의를 듣던 날의 감동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쌓인 피로와 싸우면서 강의를 듣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1학년 수업은 1주일에 4일 이상 출석해야 하는 강행군이었고 처음 써보는 과제(리포트), 팀별 발표, 중간·기말고사는 생활을 숨가쁘게 만들었다. 또 한 가지의 부담은 공부 때문에 직장에서 업무를 소홀이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생활도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했고 학교생활도 간과할 수 없었다. 사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맘도 여러 번 있었지만 만학의 길에 도전하겠다고 직장동료, 가족에게 선포해 놓았으니 포기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틀(조직)에 길들여진 내게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쌓인 인간관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때 ‘학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욕망이 용솟음쳤다. 야외로 나갔던 MT, 구슬땀을 흘리던 체육대회는 감동이자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현장실습을 하면서 주말마다 하루에 10시간씩 상담, 생활보조 서비스를 했다. 당시 힘든 내색 없이 실습에 임했던 동기들과 현장을 순회하며 격려해주던 교수님들의 자상함은 잊을 수가 없다. 2박3일간의 제주도 졸업여행 역시 삶이 힘들 때 언제든지 꺼내 회상할 수 있는 값진 추억록이 됐다.

대학생활에 특별한 의미를 한 가지 더 부여한다면 자녀들과 같은 시기에 대학공부를 했다는 것. 큰 아이가 05학번, 내가 06학번, 둘째 아이가 08학번으로 2008년부터는 대학생이 3명이나 돼 등록금이 부담됐다. 하지만 세 사람의 학비부담보다는 긍정적 효과가 컸다. 시험기간 함께 도서관에 가서 공부도 하고 과제를 할 땐 참고문헌도 찾아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학생이라는 같은 처지를 이해하면서 고민과 갈등도 쉽게 읽어낼 수가 있었고 대화도 할 수 있어 좋았다.

인생 후반기 조심스럽게 배움의 문을 두드렸지만 (나와)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 모두 열정과 끈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집념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서 배움에 대한 강한 열정, 따뜻한 감성, 높은 자신감,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특별함을 배웠다. 그것들이 학업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준 원동력과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전환점이 됐다.

마지막 학기 수업을 받고 있다. 학기를 마치면 행정학사(사회복지 전공) 학위를 받게 된다. 4년 전 학교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과 지금의 내 모습이 교차되면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단순히 대학졸업, 학사학위로 인한 성취감이 아니다. 대학생활과 수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찾아 목표를 세우고 꿈을 갖는 모습으로 바뀐 내 모습에서 진정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오세철 (병천우체국장·호서대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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