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빅딜기업, 임금협상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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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 8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로 탄생한 한국철도차량은 올해 임금협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사업부를 통합한 이 회사는 노조가 3개인 '1사(社)3노(勞)' 상태라서 헷갈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의 경우 현대정공쪽에선 6일동안 25만원의 휴가비를 주어야 하며 대우중공업은 4일에 35만원, 한진중공업은 휴가비 없이 5일만 쉰다.

한국철도차량 관계자는 "같은 문제를 놓고 개별 노조와 세번씩 따로 협상해야 한다" 며 "구체적인 법률이나 기준이 없어 노동부로부터 3개 노조에 대해 단일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만 받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강행한 정부만 탓하고 단체교섭 요구를 기피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삼성.현대.대우의 빅딜로 탄생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경우 삼성항공에서 통합된 부문에 노조가 없어 현안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대우주항공 노조가 임금협상을 요구해 왔는데 다른 통합회사 직원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활발한 가운데 관련 기업이 노조와의 협상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다.

한개 회사가 여러 노조와 교섭해야 하는가 하면, 거꾸로 한개 노조가 여러 회사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노동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자유로운 노조의 조직 및 가입을 보장(5조)하고 있으므로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2002년부터는 한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허용될 예정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초점을 맞춘 노동관계법의 규정이 기업 구조조정의 취지와 충돌한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림유화는 지난해 12월 에틸렌.폴리머 사업부문 등을 한화그룹과 맞교환하고, 나머지는 통합해 합작회사인 여천NCC사를 설립했다.

또 합성수지 사업부는 다국적기업인 필립스와 몬텔사에 각각 매각해 분리할 계획이라서 '1노4사' 체제로 바뀔 상황에 처했다.

대림노동조합 안철 사무국장은 "한화로 넘어간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분리기업 노조가 곧 공동위원장을 뽑아 창구를 단일화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노조측은 분리된 일부 기업의 경우 노조원이 50여명에 불과해 교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종전 모기업을 중심으로 회사별 노조가 모여 협상능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욱 전경련 구조조정지원센터소장은 "현행 제도로는 분리된 노조가 옮긴 회사의 단일조합에 자율적으로 편입하지 않는 한 조정이 불가능하다" 며 "구조조정과 관련된 회사는 일정기간 안에 노조를 통합하는 의무조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인수.합병 및 분사의 경우에도 비슷한 노조문제가 생길 수 있다" 며 "노사 양측의 입장을 적절히 반영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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