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대한의사학회장 기창덕 박사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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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50여년간 의료분야의 역사연구에 진력해온 대한의사(醫史)학회장 소암(素岩)기창덕(奇昌德)박사가 20일 오전 9시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지병인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76세.

황해도에서 태어난 奇박사는 48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60년대 가톨릭의대 치과학과장을 지낸 뒤 67년부터 지금까지 종로구 필운동에서 '기치과의원' 을 운영해 왔다.

그의 삶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학자로서의 기창덕과 의사로서의 기창덕이 그것이다.

사료연구가로서의 삶은 학창시절인 46년으로 올라간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숙부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고 기용숙 교수(전 서울대 미생물학과 교수)의 영향이라고 주위에선 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국내에서 발간되는 의학관련 잡지 및 신문의 창간호는 물론 의학사와 관련된 사료를 수집해 왔다.

이런 그의 노력은 국내 의학사의 지침서로 평가받는 '한국근대의학교육사' (95년)의 집필로 귀결됐다.

그의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와병중에도 그는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소개되기 시작한 개화기 의료문화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국 개화기 의문화연표(醫文化年表)제2권(1910-1945)' 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 1시간씩 정신을 집중해 임종 직전까지 집필을 계속해 왔다.

고인은 평생 모아온 서적 9천여권을 지난해 3월19일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 기증했고, 서울대병원은 이를 토대로 '소암 의문화사 연구소' 를 개설했다.

평소 중증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설비부족등으로 제대로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온 奇박사는 조남호 서초구청장과 함께 96년 3월 서초구 보건소에 국내 최초의 장애인 치과를 개설했다.

대한의학회 지제근(池堤根)회장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서 장애인과 부랑아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실천해 온 분" 이라고 회고했다.

奇박사는 연구와 봉사활동에 진력하는 치과의에게 수여하는 엘마 베스트 상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은 것을 비롯, 국민훈장 모란장(95년).자랑스런 서울대인(98년)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 부인 정경숙(丁敬淑.71)씨와 아들 윤철(允鐵.기비뇨기과 원장).선호씨(善鎬.미국 NIH연구원)등 2남. 발인은 22일 오전 8시. 3410-6912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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