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묵상집 출간한 최인호씨…결국 '님'은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쳐서 사라졌습니다. "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한 구절. 천주교 신자인 소설가 최인호씨가 최근 뜻밖에도 이 시의 한 귀절인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 을 제목 삼아 묵상집을 펴냈다. '묵상(默想)' 이란 천주교에서는 말할 수 없는 그윽한 마음을 기도 드린다는 말이다.

"주님과의 만남은 내게 있어 하늘과 땅이 만나는 날카로운 첫 키스 였습니다. 주님과의 첫키스는 한용운의 시처럼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으며 전 세계가 뒤바꿔져버리는 대변혁이었습니다. "

최씨는 1987년, 42세란 늦은 나이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젊은 날의 방황을 접고 확실한 귀의처를 찾기 위해서다. 이후 최씨는 매주 한 편씩의 묵상을 주보에 실으며 지금까지 3권의 묵상집을 펴냈다. 끊임 없이 묵상하고 며칠씩 수도원 생활도 하며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 최씨가 이 묵상집에서 자신의 신앙의 궁극에 도달하기 위해 자주 불교를 인용하고 나섰다.

"이런 제 태도에 거부감을 보이는 신자들도 물론 있습니다.그렇지만 제 영혼의 아버지는 천주교고 어머니는 불교입니다. 불경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또 성서를 들여다보면 부처님을 좀더 확연히 알게 됩니다. "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불교가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삶 속에 녹아왔기 때문이다. "불교의 영향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는 최씨는 "그래서 '2중 국적자' 라고 비난도 받는다" 고 말한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고 불교는 구도의 종교라는게 최씨 나름의 종교관. 그러나 두 종교의 궁극은 같다. 인간적인 업, 죄를 없애려 엄청나게 노력하는 치열함이 곧 구도요 하느님의 은혜에 다가가는 길이 곧 신앙이라는 것이다.

"신앙은 하늘 나라, 진리의 세계 국적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인.종교인입네 하면서도 그런 믿음.교리와 동떨어지게 생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2중 국적자' 가 아니겠습니까. "

신자가 됐다고 해서 신앙인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 믿고 복받으세요' 라는 말처럼 요즘 종교는 너무 '복' 과 '종교인의 신실하고 깨끗한 이미지' 라는 신용카드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최씨의 솔직한 느낌이다.

"오늘 신앙의 위기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 우리를 대신해서 미리 대답을 주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봉사와 희생으로 스스로 신을 찾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나 사찰만 살찌우고 신도의 마음은 위선으로만 가득찰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이제 종교는 초기의 가난한 종교, 말씀을 직접 구하는 종교로 가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어 복받을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는 말씀으로 돌아가 항상 우리 삶에, 진리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완전을 향해 하느님을, 진리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 신앙이라는 최씨. 모든 종교는 방법론, 가는 길은 달라도 그 '궁극의 님' 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삶이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