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유값, 여느 제품의 세배가 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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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이 목장의 소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기른 유기농 풀을 먹고 있는 모습. [안성식 기자]

대형마트 기준으로 0.9L에 6900원짜리 우유를 생산하는 목장이 있다. 보통 우유가 1L에 2100~2200원쯤이니까 그 세 배가 넘는 값이다. 100% 유기농이어서 그렇다. 강원도 횡성의 범산목장. 국내 몇 안 되는 유기농 인증 젖소 목장이자 제1호 친환경 인증 목장이다. 친환경 인증은 1월에 받았다. 이 농장에서 만들어 파스퇴르유업에 납품하는 ‘내곁에 목장 유기농 우유’가 바로 0.9L에 6900원짜리다.

범산목장도 처음엔 여느 우유 목장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2002년 우유파동이 몰아닥친 게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우유 공급 과잉으로 시세가 폭락하자 업체들은 낙농가의 생산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실시했다. 하루 6t가량 우유를 짜던 범산목장은 이를 절반으로 줄여야 했다. 기르던 젖소를 내다팔지 않고는 사료값 등 목장 운영비를 제대로 대지 못할 판이었다.

목장을 세운 고민수(59) 대표는 그때 유기농의 길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유기농 목장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뭔가 다른 우유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마침 불어닥친 ‘웰빙’ 바람이 도움이 됐다.

강원도 횡성 범산목장 연구원들이 우유 속세균을 검사하고 있다.

고 대표는 스스로 법적인 유기농 인증 기준보다 더 강한 기준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부과했다. 젖소 먹이의 85%가 유기농 재배한 것이면 유기농 목장으로 인증을 받지만, 95% 이상을 고집한다. ‘휴약기간’이란 것도 두 배로 늘려잡았다. 가령 정부 인증 규정에 ‘A항생제를 먹은 소는 20일 후에 젖을 짜야 한다’고 돼 있다면, 범산목장에서는 40일이 지난 뒤에 젖을 짰다. 유기농 목장 중에서도 남다른 목장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목장의 이원우 부장은 “파리약도 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가 들이마실까봐서다. 대신 구더기를 잡아먹는 천적을 풀어놨다. 목장 곳곳에는 파리잡이 끈끈이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이렇게 목장을 관리해 2005년 국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또 파스퇴르에 유기농 우유를 납품하는 유일한 농장이 됐다.

2007년에는 당시 횡성군 서원면 목장 근처에 골프장이 들어서자 혹시 골프장에서 뿌리는 제초제 등이 젖소에게 영향을 줄까 봐 그해 말 군내 우천면으로 목장을 옮겼다. 지난해엔 국제유기농인증(IFOAM)을 받았다.

현재는 사료 재배지를 포함해 56만㎡(17만 평) 목장에서 젖소 260마리를 키운다. 올해 60억원 매출을 예상하니, 젖소 한 마리가 2300만원가량을 벌어주는 셈이다. 보통 젖소 한 마리의 연간 우유 생산액(650만원)의 3.5배다.

범산목장은 파스퇴르 외에 두레유기농, 초록마을 브랜드의 우유·요구르트도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직접 만들어 공급한다. 이 부장은 “아이스크림 같은 고부가가치 유가공 제품 생산을 늘리고, 범산목장 자체 브랜드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횡성=권혁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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